'게임 마니아' 변호사 'AI'로 부동산 법률 상담 나선 사연

[피플]강태헌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AI 부동산 권리분석 프로그램' 개발 "올해 말 상용화 목표"

박보희 기자 2018.10.16 05:00

"안전한 권리 확보에 상당한 위험이 존재합니다. 세부 내용에 대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은 후 신중하게 거래할 것을 권고합니다."

인공지능(AI) 부동산 권리분석 서비스 '로빈(LAWBIN)'에 한 오피스텔 주소를 적어넣자, '위험'이라는 평가와 함께 '신중한 거래를 권고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로빈은 이 오피스텔은 현재 '가등기' 상태여서 거래 이후 권리행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가등기를 소멸시키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남겼다. 

법무법인 한결은 SK C&C 등과 함께 부동산 법률 AI 서비스인 '로빈'를 만들어 시범 운영 중이다. 올 연말까지 일반인들도 '로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로빈의 첫 아이디어를 내고 현실화시킨 이가 법무법인 한결의 강태헌 변호사(44·연수원 32기)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부동산 매매는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일이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전재산을 잃을 수도 있는데 법률 관계가 너무 어렵게 얽혀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전문가에게 법률 조언을 받으면 좋겠지만 비용 부담도 크고, 전문가들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놓치고 넘어가는 것이 있을 수 있거든요. 일반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강 변호사는 '로빈'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강 변호사가 로빈의 아이디어를 낸 것이 지난해 말, 개발 과정만 1년에 달한다.

로빈은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건축물 대장을 함께 분석해 각종 사실관계, 권리관계 등을 분석해준다. 검색창에 주소와 거래 유형(매매·임차), 역할(매수·매도), 금액 등을 입력하면, 로빈은 스스로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떼고 건축물 대장을 찾아 분석을 시작한다. 등본과 대장을 찾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다른 점은 없는지, 얽혀있는 권리관계는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로빈의 역할이다. 이렇게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 △안전장치 필요△위험 △위험 현실화 등 4개 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별로 거래 당사자들에게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조언까지 곁들여 제공한다. 

강 변호사가 로빈을 생각한 것은 한때 게임에 심취했던 경험이 시작이 됐다. 강 변호사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의 고전이라 불리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에 빠져 주변에서는 '게임 마니아'로 불렸다. 변호사가 돼서는 도시개발사업을 비롯한 각종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사건들을 맡으며 부동산 영역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접했다. '집'은 누구나 필요하고 '부동산'을 둘러싼 법적 분쟁 역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데, '법'은 멀었다. 

"실제 부동산들을 보면, 아파트에 대지권이 없거나 대지권은 있는데 토지에 저당권이 설정된 경우 등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어요. 또 등기와 대장이 다르게돼있어서 면적, 용도 등이 다르게 설정된 경우도 있고요. 모두 거래 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일상적으로 나오는 사례는 아니라서 공부를 하고 판례를 찾아봐야 알죠. 일반인들이 이런 사례를 미리 알고 적절히 대처하기는 어려워요."

게임 마니아였던 변호사 눈에 AI가 들어왔다. 강 변호사는 폐쇄적인 법률 서비스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AI가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법률시장은 소수의 수요자를 위한 공급자 중심의 폐쇄적인 시장이었다고 생각해요. 법률과 IT를 결합해 법률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던 다수의 대중이 적절한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AI를 떠올렸죠. 법률과 IT를 결합해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강 변호사의 목표는 부동산에서 멈추지 않는다. AI를 활용한 생활 법률 상담 서비스나 전문 판례 검색 서비스 개발도 진행 중이다. 

"사실 재미있어서 하는거에요. 수준을 높이다보면 민·형사 결과예측과 계약서 검토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봐요. 점점 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도 가능하겠죠? 그때까지 열심히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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