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찰이라는 편견

[우리가 보는 세상]

심재현 2024.04.15 06:00
서울중앙지검 로비. /사진=뉴스1

꺼림칙한 전화를 받았다. "심재현씨죠?" 무의적으로 그렇다고 답했더니 전화를 툭 끊는다.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다른 발신번호로 전화가 왔다. 같은 목소리로 똑같이 묻는다. 누구냐고 되묻자 또 전화를 끊는다. 재발신했지만 받지 않았다. 두차례 통화 이후 보이스피싱에 당했나, 개인정보가 유출됐구나 싶어 찜찜했던 기분은 그날 밤 아내와 대화 후 한바탕 웃고 풀렸다.

"첫사랑 아니야?" "남자 목소리던데." "편견을 버려."

남편의 불안을 덜어주려는 아내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가 틈새를 파고든 혜안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편견이란 게 그렇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슬. 아내 말대로 누군가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꼭 이성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4·10 총선이 끝나면서 서초동에선 "검찰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이 선거를 앞두고 그동안 정치 시비를 의식해 속도를 조절했던 주요 정치사건 수사에 다시 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빠지지 않는 것은 이번에도 정치검찰론이다. 검찰이 의도를 가지고 법의 잣대를 악용할 것이라는 오래된 편견이다.

4·10 총선에서 당선된 300명 가운데 공교롭게도 범야권 소속이면서 강성 검찰 개혁론자인 당선인들이 상당수라 이런 부담스러운 눈길을 피하기 더 어렵게 됐다. 선거 이튿날부터 개혁 입법을 외친 이들에 대한 수사는 입법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검찰이 억울함보다 더 쓰라릴 지점은 이런 편견을 어느 정도 자초했다는 지적을 마냥 부인하기만은 어렵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 70여년 검찰이 걸어온 길이 항상 양지는 아니었던 까닭이다. 정치의 시간 뒤에 으레 뒤따랐던 사정국면의 쓰린 기억이 생생한 이들 앞에서 "증거와 법리에 따라"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하진 말기 바란다. 정치인들의 책임이 없다거나 그저 시간만 떼우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정치가 정치를 핑계로 지지세력을 등에 업은 채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장면 역시 놀라울만치 익숙한 우리 역사의 비애다. 정치 스스로 부끄러운 과거를 씻어내는 데 검찰이라는 존재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기여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난 날 한 방송사 패널로 출연했던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정치인은 말이 아니라 걸어온 길로 규정된다"고 했다. 한발 더 나가 얘기하면 정치인도, 검찰도 앞으로의 진정성은 지금부터 걸어갈 길로 규정된다.

편견에 사로잡힌 이에게 남는 것은 아집과 오만이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 티끌을 탓하는 정치가 22대 국회라면 앞으로 4년의 여의도도 강도 높은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스스로 떳떳하다면 검찰을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 정치가 상대할 검찰은 과거의 검찰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검찰이다. 정치도, 검찰도 편견을 넘어야 활로가 보인다.

하나 더 덧붙이면 그날 전화 속 남자에게 전하고 싶다. 정말 나를 못 잊어 전화한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전화해주길 바란다. 꿈에도 못 잊을 마음을 몰라줘 오랜 세월 애태웠다면 차 한 잔 나눌 용의는 있다.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누구든 만나는 게 대수랴. 일단은 만나는 것 자체가 소통이다. 정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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