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전쟁]②변호사와 변리사는 왜 '20년'째 싸울까

[the L리포트]"국가경쟁력 높이기 위한 두 직역간 합의점 찾아야"

박보희 기자 2016.03.28 08:57


"특허침해 소송을 대리할 수 있게 해 달라"(대한변리사회)
"변리사는 소송전문가가 아니다"(대한변호사협회)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부터 변호사와 변리사는 '특허침해 소송 대리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변리사법 개정으로 변호사도 실무수습을 받아야 변리사 자격을 갖게 되면서, 해묵은 소송대리권 문제도 재점화됐다. 이들의 왜 20년째 싸우고 있을까.

"내용 잘 아는 변리사가 법정에 서야"vs"변리사는 소송대리인 아니다"

특허침해 소송 대리권은 변리사 업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지난달 치러진 38회 변리사회 회장선거에서도 '특허침해소송 대리권 확보'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특허관련 소송은 크게 둘로 나뉜다. 특허심판원에서 진행되는 특허유무효 결정과 특허권리범위 결정에 불복하는 심결취소소송, 법원에서 진행되는 특허침해 여부와 이에따른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특허침해소송이 있다.

현재 변리사는 심결취소소송에 대해서는 소송대리권을 갖는다. 변리사법 8조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특허침해 소송은 대리할 수 없다.

변리사 측은 "첨단 기술 내용을 잘 파알할 수 있는 변리사와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가 공동으로 소송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꾸준히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변호사 측은 "변리사는 기술의 분별을 업으로 하는 자격이지 소송대리 및 변론을 업으로 하는 자격이 아니다"며 "소송대리권 운운하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훼손하는 주장을 즉각 중단하라"며 절대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변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2년 헌재는 "특허침해소송은 고도의 법률지식과 공정성·신뢰성이 요구되는 소송으로 변호사 소송대리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민사소송의 영역"이라며 "변호사에게만 특허침해소송의 소송대리를 허용하는 것은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공동소송대리로 소송당사자 권익 보호할 수 있는 방안 검토 필요"

당시 헌재는 특허침해 소송 대리권은 변호사에게 있다고 판단했지만, 변리사가 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은 보충의견으로 "특허침해소송은 첨단기술의 실체파악 없이는 사안의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한 전문성이 있는 사건으로 변리사가 직접 법정에 나와 재판부에 진술하는 것이 재판의 신속화·충실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허침해소송에서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소송대리를 허용해 소송의 신속화·전문화를 도모하고 소송당사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적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행 법상 변리사는 특허소송침해 대리권이 없지만, 법 개정을 통해 공동 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변호사·변리사 공동 소송 진행 '72.1%'"

실제 특허권 침해소송은 변호사와 변리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2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실시한 연구용역 보고서 '특허소송 관할 개선 및 소송대리 전문성 강화방안 연구'에 따르면 특허 침해소송에서 변리사의 조력 없이 변호사 단독으로 소송을 진행한 경험이 있느냐는 설문에 응답자의 72.1%가 '거의 없다'고 답했다. 단독으로 진행한다는 응답은 16.7%였다. 보고서는 "실제적으로 변호사와 변리사가 협력해 진행됨을 알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A변리사는 "소송 준비를 다 해놓고도 대리권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장에서도 변호사에게 쪽지에 적어주며 재판을 진행하기도 한다"며 "의뢰인이 제대로 된 변론을 받을 수 있도록 변리사가 재판 때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중 해오름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소송대리권 여부를 떠나서 실질적으로 당사자가 권리구제를 받으려면 제대로 된 변론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재판부도 법적 대리인인 변호사도 잘 모르는 내용이라면 제대로 된 변론을 받을 수가 없다"며 "소송 당사자들을 위해서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변리사가 변론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은 재판부 입장에서도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때문에 같은 사건을 두고도 특허심판원의 심결취소소송과 법원의 특허침해소송에서 다른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 '특허소송 관할 개선 및 소송대리 전문성 강화방안 연구'에 따르면, 51.1%의 응답자가 특허침해 소송과 심결취소 소송이 많은 경우 병행해서 진행된다고 답했다.

A변리사는 "아무래도 특허심판원이 심사나 기술분야에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고 보이는 경우도 있다"며 "법원은 복잡한 법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더 잘 판단내릴 수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재판부가 새로 부임했다면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과거에는 비공식적으로 법원에서 변리사가 특별기일 형식으로 재판장실이나 준비절치실 같은 곳에 모여 기술설명회를 열기도 했다"며 "하지만 소송대리권 문제가 나오면서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돼 소송 당사자들만 피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공동소송대리 가능" 독일"변리사 법정 진술권 인정"

특허 분야의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변리사들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두고 있다.

독일은 변리사가 침해소송 대리권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소송당사자의 신청이 있으면 변리사가 소송에 참가하고 법정진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판결문에도 변리사의 이름을 표기한다.

변호사가 일정기간 실무수습 과정을 거치면 변리사로 등록할 수 있는 일본은 지난 2002년 법개정을 통해 변리사의 공동 소송 대리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변리사가 소송 대리권을 얻기 위해서는 일본변리사회가 실시하는 침해소송에 관한 연수를 수료하고, 특허청 주최의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영국은 특허변리사협회에서 송무인가증을 받은 변리사는 법정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가 가능하다. 특허지방법원에서는 변리사 단독으로 침해소송을 대리할 수도 있다.

미국의 특허변리사는 소송을 대리할 수 없지만, 법원에서 전문가로 증언을 할 수는 있다. 단독 대리는 변호사만 가능하지만, 변호사가 이공계 대학을 졸업해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특허청에서 4년 이상 근무해야 변리사 자격을 얻어, 특허변호사가 될 수 있다. 대부분 관련 소송은 변리사와 변호사 자격을 모두 갖춘 특허변호사에 의해 이뤄진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해 변리사로 활동하다 변호사로 개업한 B변호사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변리사의 소송 참여가 분명 필요하다"면서도 "기술적 범주를 넘어서 손해배상이나 그에따른 강제집행, 손해배상 등 법률적 부분이 더 문제가 되는 소송전문영역의 부분은 변리사가 수행하기는 어려운 면도 분명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리사가 특허침해 소송에서의 경험이 있어야 특허출원 단계부터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이는 곧 지식재산권 분야의 국가경쟁력으로 연결된다"며 "지금까지 논란을 보면 두 단체가 이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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