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로펌 장악 국내기업 외국소송, 되찾아오겠다"

[the L초대석][로펌 대표 인터뷰] ②강신섭 대표변호사(법무법인 세종)

황국상 기자송민경 기자 2017.05.02 05:00

강신섭 대표변호사 /사진제공=법무법인 세종



미국계 로펌 롭스앤그레이가 2012년 7월 처음 한국에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28개 외국로펌이 한국에 진출했다. 한국이 미국·EU(유럽연합)과 체결한 FTA(자유무역협정)로 법률시장의 단계적 개방이 진행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3월 중순부터는 미국로펌에 대한 3단계 법률시장 개방도 이뤄졌다.

법무법인 세종의 강신섭 대표변호사(60·사진)는 지난 약 5년간의 외국로펌 한국진출에 대해 “외국로펌 중에서도 준비없이 한국시장에 나와 고전하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곳이 많다”며 “약 3조원 정도에 달하는 한국내 법조시장에서 외국로펌이 활동가능한 영역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외국로펌에 빼앗긴 한국기업의 아웃바운드 수요 되찾을 것”= 강 대표는 “국내 기업 법무 부문 중 송무나 당국 대응 등의 부문은 세종을 비롯해 김앤장, 광장, 태평양, 화우, 율촌 등 빅6로펌이 과점형태로 장악하고 있고 외국로펌은 경쟁이 되지 않는다”며 “법률서비스 산업은 여타 산업과 달리 외국계 회사가 들어와서 현지화를 추구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세종은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여왔던 M&A(인수합병) 등 금융분야를 비롯해 공정거래, 송무 등의 경쟁력을 다지는 동시에 조세, 노동, IP(지식재산권) 부문의 인력을 대거 확충하고 있다. 국내 기업법무 시장에서의 과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그는 또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기업들이 미국·유럽·동남아 등 해외시장에서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이를 지원하는 아웃바운드 송무·자문 등 수요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로펌이 들어온 것”이라며 “실제 한국기업의 아웃바운드 수요는 지난 5년간 외국로펌에 많이 빼앗긴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웃바운드 시장을 외국로펌이 독식하는 것도 오래 갈 수는 없다”며 “세종은 경쟁력 있는 외국변호사를 많이 채용해 훈련시키는 등의 노력을 통해 그간 외국로펌이 잠식했던 아웃바운드 시장을 점진적으로 되찾아올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한국 기업고객들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나 비용통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외국로펌을 선임했다가 다시 한국 대형로펌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있다”며 “현 상태대로라면 법률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더라도 한국로펌이 큰 타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고객이 가는곳엔 우리도 간다, 글로벌 비즈니스 부서 신설”= 강 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간 국내 대형로펌들이 집중하지 않은 시장에 진출해 시장외연을 넓히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그는 “그간 외국이라고 하면 한국기업의 주요시장이었던 미국·유럽·중국만 신경을 썼지만 베트남, 미얀마, 인도 등 동남아와 남미, 러시아, 극동 등 지역도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조만간 글로벌 비즈니스 부서를 따로 만들어 ‘우리 고객이 가는 곳이면 우리도 간다’는 각오로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어쩌면 해외진출에서 당장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시장동향을 살피는 등의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며 “해외진출은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의 선제적인 해외진출이 성과로 이어진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국진출 건이었다. 세종은 2006년 1월 중국당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아 북경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2010년 3월에도 별도로 상해에 사무소를 냈다.

처음에는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을 돕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중국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과정에 안내자로 나서고 있다. 2014년 중국 텐센트가 CJ게임즈에 당시까지로는 국내 게임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5억달러(5300억원)의 투자를 집행할 때 세종이 법률자문을 도맡아 신주발행·인수에서 기업분할·합병 등에 이르는 복잡다단한 거래를 성공리에 마치도록 도왔다.

꼭 지점·사무소 개설을 통해 비용을 많이 들여서만 해외진출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강 대표는 “2~3년전 인도 뉴델리로 출장을 갔을 때 일본 변호사들이 유명 인도로펌에 2~3명씩 포진해 협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인도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법률수요에 대응하고 인도 현지기업의 한국진출을 도울 수 있는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률시장 확장 더딜 것, 지속적 전문성 개발만이 답”= 최근 국내 법률서비스 산업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시장포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전문성의 지속적 강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시장의 개척을 들었다.

강 대표는 “세종이 특수형태의 금융 론(Loan) 서류를 작성하면 불과 몇 개월, 길어야 1년이면 소형 부티크 로펌에서 해당서류의 포맷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 때 서류 하나에 수천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시장진입자가 늘어나면서 해당 서류작업의 단가가 떨어지고 수익성이 악화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로펌 등의 노력으로 일단 고부가가치 서비스가 출시되더라도 곧이어 경쟁자들이 진입하면서 단가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법률시장 전반의 성장세도 그만큼 주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법률서비스 산업은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신규로 진입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라며 “어떤 부문에서든 선도자로서의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기간도 점차 짧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시점에는 도산·회사정리 분야에서 화의결정을 얻어내는 데만 수억원씩을 벌 수 있었지만 이제 도산법 분야는 누구나 접근가능한 보통법 영역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금융 전문변호사도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엔 최고로 잘 나갔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전과 같은 호황을 맞지 못하고 있다”며 “IP(지식재산권) 부문도 삼성·애플간 소송전이 종결되면서 이제 ‘큰 시장은 다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퀄컴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원대 과징금 소송이 진행되는 등 공정거래 파트의 인기가 높지만 이 역시 얼마나 오래 갈 이슈인지는 모른다”며 “변호사 수가 늘어날수록 특정분야가 유망할지 아닐지를 따지기보다 해당분야에서 얼마나 경쟁력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없애야 법률시장 신뢰제고 가능”= 강 대표는 법률서비스 시장의 외연확장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해물로 법조계에 뿌리박힌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를 꼽았다. 지난해 잇따라 불거진 검찰 고위간부나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각종 비리가 폭로되면서 사법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법률시장의 잠재고객들이 국내 법조계를 외면하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 대표는 “한국의 부패유형은 권력형 부패에서 엘리트끼리 카르텔을 형성해 공고한 진입장벽을 형성하는 유형으로 변모해갔다는 김영란 전 대법관의 지적은 정확하다”며 “지금도 특정 명문고나 특정 지역·대학, 특정 연수원 기수, 근무지 등을 기준으로 한 각종 카르텔이 공고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검찰 등 인사에서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다보니 한 번 공부를 잘 했던 사람들이 인성·윤리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채 커가는 걸 보면 안타깝다”면서도 “전관출신의 변호사개업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체제보다 지금의 로스쿨 체제는 다양한 전공과 출신의 인재를 다각적으로 평가해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는 통로로서 엘리트형 카르텔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변호사 배출이 과다하다? 지금이 적절”= 아울러 강 변호사는 변호사 배출인원이 과다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너무 많다거나 더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강 대표는 “과거 사법시험 합격자를 종전 120~140명선에서 300명으로 늘린 첫 해에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당시에도 ‘변호사들이 다 굶어죽는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고 사회도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당시부터 법조인 배출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날 뻔 했다”고 회고했다.

또 “법률소양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경제·문화·정치 전문가들이 나와서 세상을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의 법조인들은 사고의 틀이 기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문제가 많다”며 “법조 전문인들이 법원이나 검찰, 서초동 송무시장에만 머물지 말고 금융기업, 일반기업이나 정치계 등으로 보다 많이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만 해도 상원의원의 90%를 변호사 출신이 차지하고 있고 월스트리트나 일반기업의 CEO(최고경영자) 중에서도 변호사 출신이 다수”라며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좁은 의미의 법조계 바깥으로의 법률전문가 진출은 매우 드물다”고 지적했다.

[Who is] 1957년생인 강신섭 대표변호사는 1979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했다. 1986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한 후 2001년 세종에 합류했고 증권·파생상품,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부문의 사건을 주로 담당해왔다. JP모건과 국내 금융사 사이의 파생금융상품 소송, 대우채 관련 수익증권환매대금 소송 등 증권·금융관련 사건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신탁회사와 위탁자, 일반수분양자간의 소송을 통해 개발신탁에서의 신탁회사 법적책임에 관한 최초의 판례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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