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 좀 말려줘요"…도둑질에 중독된 사람들

[Law&Life-세상의 빈틈]① 어느날 갑자기 생긴 '병적도벽'으로 상습절도범 전락

박보희 기자, 양성희 기자 2017.06.16 11:01
A씨 집에서 발견된 훔친 물건들/사진=송파경찰서

#집안 곳곳에 포장도 뜯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집 주인은 50대 A씨. 모든 게 A씨 혼자 훔친 물건들이었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자녀들마저 출가해 집에 혼자 남은 A씨는 우울증에 빠졌다. 어느 날부턴가 마트의 생활용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지만 물건을 훔치고 나면 우울했던 마음이 풀렸다. 그렇게 몇번 경험이 쌓이자 마음이 답답할 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백화점으로 향했고, 물건을 훔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A씨가 훔친 물건만 1800여개, 2400여만원 어치에 달했다.

#벌써 6차례나 절도죄로 처벌받은 B씨. 그동안 그가 훔친 물건은 1만원짜리 화장지, 3만원짜리 기저귀와 티셔츠, 8만원짜리 세제 등. 남편이 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생활이 어렵지도 않았고 훔친 물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B씨는 생리 기간만 되면 밖에 나가고 싶고, 물건을 보면 온 몸에 열이 나면서 생각없이 물건을 집어들고 나가게 된다고 했다. 생리 때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참으려고 했지만 급한 일이라도 생겨 밖에 나갔다간 어느새 물건을 슬쩍 하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돈이 없어서' 또는 '필요해서'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같은 행위는 충동 조절 장애의 일종인 '병적도벽'에 해당한다. 캐나다 정신의학 저널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가 구속된 이들 가운데 평균 8% 가량이 병적도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0만4266명이 절도범으로 처벌을 받았다. 보고서 내용대로 이 중 8%가 병적도벽이라면 그 숫자만 83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상습절도 혐의가 적용돼 가중처벌로 실형 이상의 중형을 받게 된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건을 훔치고 후회를 반복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처벌 뿐 아니라 '치료' 역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병 때문에 훔쳤다" 핑계?…병적도벽은 '정신질환'

병적도벽의 특징은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훔치고, 훔친 물건은 팔아서 돈으로 바꾸거나 사용하지 않고 쌓아놓는다는 점이다. 훔친 '물건'이 아닌 '행동' 자체가 목적이다. 병적도벽을 앓는 이들은 잘못을 알면서도 스스로 충동을 막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는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또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 진단 기준에 따르면 병적도벽은 △개인적으로 쓸모가 없거나 금전적으로 가치 없는 물건을 훔치려는 충동을 막는데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훔치기 직전 긴장감이 고조되며 △훔쳤을 때 기쁨, 충족감, 안도감이 있고 △훔치는 것이 분노나 복수, 망각, 환상, 환각 때문이 아니며 △ 조증,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이 아닐 경우에 해당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병적도벽은 이성적 판단력을 결여한 채 훔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발생한다"며 "특히 충동 행동의 표현이 방해를 받으면 불안이 급격히 증가하고, 불안을 해소할 방안으로 절도행위를 더욱 강렬하게 원하게 된다. 절도충동을 행동으로 옮기고 난 후에는 긴장감이 이완되고 편안한 일상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병적도벽의 원인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들은 배우자 사별 등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여성의 경우 생리 전 호르몬 변화 등으로 병적도벽이 생겼다는 사례도 있다. 이 교수는 "일종의 행위중독"이라며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외상후 증후군) 때문에 병적도벽이 생기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라는 뜻이다. 특별한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평범한 이웃이 중범죄자 되기 전 '치료'로 막아야"

병적도벽이라는 정신질환이 원인이 됐다고 해도 범죄는 범죄다. 처벌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절도는 형법 제329조에 따라 6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다. 3회 이상 절도를 저지르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라 가중 처벌된다.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법원은 정신질환에 따른 절도라도 수차례 계속된다면 가중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매치기로 10차례 전과가 있던 C씨는 또다시 소매치기를 했다가 잡혀 재판을 받았다. C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었고 병적도벽이 있다는 정신감정도 받았지만 상습절도로 가중 처벌을 받아 징역 2년에 처해졌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정신감정 결과 충동조절장애 등 병적도벽이 인정되면 심신미약에 해당해 감경 사유로 인정받을 수는 있다"면서도 "특가법상 가중 처벌 여부는 처벌받은 전력과 횟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심신미약이 있다고 해도 적용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병적도벽을 앓는 '환자'들이 상습절도범이 돼 가중처벌을 받기 전에 치료를 통해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처벌은 엄중히 하더라고 처벌의 내용이 치료적 목적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올들어 정부도 병적도벽을 중독범죄의 일환으로 보고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법무부는 지난 1월 군산교도소 심리치료센터에 처음으로 도벽 사범 치료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그동안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범죄 수형자에만 제공하는 심리치료 프로그램의 대상을 도벽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치료 대상은 절도범 중 절도광 관련 검사에서 중간 이상 평가 결과를 보인 수형자들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도벽 특성과 행위에 대한 치료적 접근으로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 도벽사범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절도에 대한 자기 이해, 충동 및 정서조절, 분노 감정 다스리는 법 등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군산교도소에서 도벽 치료를 받는 이들은 10여명 수준이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병적도벽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 연구가 부족한 단계"라며 "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들의 재범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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