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형' 선고하면 범죄 안 저지를까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

김광민 변호사(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2017.07.28 05:11

종종 전문가 또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영역에서도 전문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도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과 관련한 본지의 지난 4월 7일자 “'조현병' 소녀에게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나”라는 글에서 이런 실수를 저지른바 있다. 

피의자 측의 ‘조현병’ 주장을 별도 검토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 글을 썼다. 후에 피의자는 조현병 환자가 아님이 밝혀졌다. 정신 병리학 분야에는 문외한이면서도 조현병에 대해 아는 척 글을 쓰다 보니 이러한 과오를 범했다.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크게 반성하는 부분이다.

굳이 석 달도 넘은 과거의 글을 꺼낸 이유는 조현병 논란을 일으켰던 그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청소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발의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 제4조를 개정하겠다고 했다. 

‘소년법’ 제59조는 범죄 시 18세 미만일 경우 15년을 넘는 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특정강력범죄법’ 제4조는 ‘소년법’ 제59조에도 불구하는 몇몇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18세 미만일지라도 징역 20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한다. 

‘소년법’이 15년을 상한으로 규정한 18세 미만인 자의 형량을 ‘특정강력범죄법’ 제4조가 20년으로 높인 것이다. 그런데 표의원이 이마저 없애겠다고 한다. 즉 18세 미만인 자에게도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어야한 하다는 뜻이다.

표 의원이 법안을 준비한 계기는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이라고 한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형량 완화 특칙을 규정한 부분의 개정을 통해 국민 일반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하고 “사회적 불안을 불식시키고, 미성년자의 잔혹한 범행으로 어린 자녀를 잃은 유가족의 충격과 상실감을 덜어주기 위해 입법의 개선이 꼭 필요하다”며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행히 “소년범죄를 예방하고 억제하는 데 처벌 강화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1994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시에 위치한 콜럼바인(Colombine)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에릭과 딜란이라는 두 학생은 900여발의 총을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사 1명을 포함한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부상자는 수없이 많았다. 

미국은 충격과 비애에 빠졌다. 그런데 얼마 후 의외의 인물이 총기난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었다. 가수 ‘마를린 맨슨’이었다. 에릭과 딜란이 평소 마를린 맨슨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언론들은 마를린 맨슨의 선동적인 음악이 평범한 고등학생들을 살인마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을 다룬 ‘볼링 포 컬럼바인’으로 2003년 아카데미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정작 문제의 본질은 모든 것을 적대시하는 정부의 태도와 고등학생들도 손쉽게 총기를 구합할 수 있는 제도에 있다고 설파했다. 정부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애꿎은 마를린 맨슨만 잡았다는 것이다.

한 가수에게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을 덮어씌운 미국 언론의 태도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여론을 호도한다는 비난을 받을만한 행태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가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1990년대 일본만화 ‘슬램덩크’가 사회적으로 문제된 적이 있다. 슬램덩크는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인데 초반부 주인공 강백호가 농구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학원폭력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중고등학교의 학원폭력이 문제되자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일본 만화가 그들의 폭력성을 조장한다며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켜졌다. 2000년대에는 1990년대 일본만화가 받았던 비난이 고스란히 게임으로 옮겨갔다. 청소년 폭력이 문제될 때마다 게임의 폭력성이 청소년 폭력을 조장한다며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70년대 홍콩 무협물, 1980년대 홍콩 느와르물, 1990년대 일본 학원폭력만화 그리고 2000년대 액션게임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액션물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리고 항상 “청소년 범죄가 예전에 비해 점차 악랄해 지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한탄이 함께 했다. 

하지만 액션물이 청소년 범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진실성 있는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한국 청소년들은 쌍절곤으로 상대를 사정없이 두드려 팼던 1970년대 이소룡부터 30년이 넘도록 폭력물에 강한 영향을 받아온 한국 청소년들은 대부분 조직폭력배가 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폭력의 책임은 폭력물이 청소년들을 폭력으로 인도한다면서도 이를 근절시키지 않은 어른들에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무협, 느와르, 만화 그리고 게임…. 이것들은 모두 마를린 맨슨처럼 청소년 범죄의 진정한 원인을 호도하기 위한 희생물은 아닐까?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은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 학업을 중단하고 집안에서만 살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사회와 격리되어 자신만의 골방에서 폭력물에 심취하고 게임에 빠져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사회질서와 도덕, 이타심을 가르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자아를 형성시켜 준 것은 오로지 골방에서 접한 폭력적 문화들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냉혹한 살인자로 만든 것은 게임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청소년들이 우울증을 겪게 만든 우리 사회, 그녀를 골방에 가둔 가정일 것이다.

영화나 게임 등에서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찾을 때 항상 따라다니는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처벌 강화다. 처벌이 약해서 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진정한 원인을 숨기는 행위다. 과연 20년의 징역이 무섭지 않아 범죄를 저지를 청소년이 있을까? 20년의 징역을 살아야 함에도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이 사형을 당한다고 한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처벌의 범죄예방 효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사형이 가장 많이 집행되는 미국과 중국은 오히려 강력범죄 발생률에서도 상위권을 달린다. 처벌의 강화에 범죄예방효과가 없다는 실증이 더 많다.

이에 더해 표의원은 “미성년자의 잔혹한 범행으로 어린 자녀를 잃은 유가족의 충격과 상실감을 덜어주기 위해 입법의 개선이 꼭 필요하다”며 피해자의 보상을 위해 처벌을 강화하자는 주장까지 했다.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사회가 치유해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범죄자라 해도, 피해자의 위로가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을 피해자의 위로라는 수단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 대한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피해자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처벌의 강화만 주장하고 범죄의 진정한 원인은 등한시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피해자에게는 그것이 더 큰 상처일 것이다. 정말 피해자를 위한다면 진정한 원인을 분석해 범죄를 예방하여야 한다. 무기징역과 사형을 도입해도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애꿎은 영화와 게임 탓은 이젠 그만 했으면 한다. 그리고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가 예방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에서 깰 때도 됐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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