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안돼!" 법이 막은 직업이 있다?

[박보희의 소소한法 이야기] 여자 '광부' 없는 이유…'여성 보호' 위해 '갱내' 근로는 안된다는 근로기준법

박보희 기자 2017.08.31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사용자는 여성과 18세 미만인 자를 갱내(坑內)에서 근로시키지 못한다. 다만, 보건·의료, 보도·취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근로기준법 제72조)

근로기준법 제72조에 따르면 여성은 '갱내'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갱내'란 '지하에 있는 광물을 시굴·채굴하는 장소 및 지표(지상)에 나오지 않고 그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로'를 말하는데요. 즉 여성은 광부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 없다고 법이 정해둔 겁니다.

법은 처벌 조항도 두고 있습니다. 같은 법 제109조는 만약 이를 어기고 여성에게 갱내에서 일을 시킬 경우, 즉 광부로 채용할 경우 사용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조항은 근로기준법이 처음 생긴 1953년부터 있었는데요. 다만 이후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단서 조항이 생기긴 했습니다. '보건·의료, 보도·취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여성도 갱내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건데요. 의사나 간호사, 기자, 연구자 등이 '잠시' 갱내에 들어가는 것은 괜찮다는 얘기입니다.

단서 조항을 달면서도, 여전히 여성이 '갱내'를 주 작업 공간으로 하는 직업을 갖을 수는 없다는 조항은 고수했습니다. 1953년 만들어진 법이 수차례 시대에 맞게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이 조항은 60여년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한을 '갱내'라는 장소로 정해뒀기 때문에 여성은 '갱내'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모든 직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직접 광물을 캐내는 채굴 작업 뿐 아니라 사무직이라도 작업장소가 '갱내'라면 할 수 없는 거죠.

광산업이 사양산업이라 현재 이 조항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실제 이 조항때문에 여성을 채용하지 못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대한석탄공사는 지난 6월 말 기준 총 임직원 수가 1244명인데, 이중 여성은 전체 직원의 3% 수준인 38명에 불과합니다. 대한석탄공사 측은 여성 비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 "1300여명의 직원 중 1200여명이 갱내 근무를 하는 현장직이라서 법에 따라 여성을 채용할 수 없다"며 "여성 직원이 적을 수 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인인 여성이라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직업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왜?'라는 의문이 드는 법 조항입니다. 이런 법은 왜 생기게 된 것일까요?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당시 이 조항을 만든 이유까지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여성의 신체적 특성 등을 고려해 여성 보호 차원에서 만들어진 법으로 보인다"며 "임신 가능성을 고려해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 등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중에 발간된 노동법 해설서 등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연약한 여성 및 아직 성장과정에 있는 연소자의 안정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사실 근로기준법에는 여성과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조항이 다수 존재합니다. 제5장 '여성과 소년'이라는 항목에서 근로가능한 최저 연령, 야간근로와 휴일근로가 가능한 조건 등을 정해두고 있는데요.

여성 보호 조항들은 '출산 전후 여성'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태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약품을 사용하는 사업장 근무를 제한하거나 출산휴가 등을 주도록 하는 내용들이죠. 즉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임신'을 했기 때문에 보호하도록 하는 조항들입니다.

제72조처럼 모든 여성을 일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은 찾기 힘듭니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답은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업 선택에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죠.

2009년 초 출간된 한 노동법 해설서는 '여성 근로자를 남성 근로자에 비해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첫째, 여성은 남성과 다른 생리적·신체적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임신·출산·보육이라는 특유한 모성기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에 부수되는 생리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모성기능의 저하, 파괴를 방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여성근로자는 보호돼야 하는데 이것은 여성근로자 자신을 위해서만 아니라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간구돼야 할 조치다.

둘째, 여성은 가사노동의 부담자라는 사회적인 실정의 측면에서도 특별보호가 필요하다. 여성은 가정에서 육아 이외에도 가사노동을 전속적으로 부담하고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 적절한 보호를 해 가사생활과 직장생활의 조화를 도모하다는 측면에서 여성근로자는 보호돼야 한다."

고작 8년 전 나온 책인데도 2017년 현재 인식과는 큰 괴리가 느껴지는 설명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육아와 가사, 노동'이 (제대로 이뤄지는지와 별개로) 당연하게 여겨지고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요즘 시대에 '출산과 육아를 위한 특유한 모성' '가사노동을 전담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보이는데요.

아마도 60여년 전 이 조항이 만들어졌을 때는 이런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합니다. 사실 '갱내' 근로가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같은 조항이 만들어졌다면, 노동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엄격한 근로 환경을 만들고, 혹시나 근로 환경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성 건강을 해쳐 근로는 막을 정도의 근무 환경이 남성이라고 괜찮을리는 없으니 말입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다'는 요즘 시대에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직업 선택을 제한한다'는 법,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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