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친절한 판례氏] '수혈거부'로 사망…보험금 받을 수 있나

"수혈 거부가 유일한 사망 원인 아니야…보험금 지급해야"

박보희 기자 2017.10.12 12:15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교통사고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의 보호자가 수혈을 거부해 환자가 사망했다. 보험사는 이는 '고의에 의한 사고'에 해당한다며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 환자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운전 중이던 A씨는 졸음운전을 하다 실수로 가로수를 들이받고 말았다. 교통사고로 옆자리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 B씨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수혈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A씨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에 동의할 수 없었다. 수혈에 동의하지 않고는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수술을 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의료적 조치만 받다가 아내는 숨지고 말았다.

보험사들은 A씨가 수혈을 거부한 것은 보험약관상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고의에 의한 사고'로 보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보험사는 사망을 피할 수 있었는데 A씨가 이를 거부해 사망했으니 '고의'로 낸 사고에 해당해 보험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A씨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2003다26075)

보험약관의 '고의'는 '자신의 행위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알면서 행하는 심리 상태'를 말하다. 대법원은 "사고에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경우 그 중 하나가 고의 행위라고 입증하는 것만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족하다"며 "고의 행위가 보험사고 발생의 유일하거나 결정적인 원인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고로 인한 상해가 중해서 수혈을 했어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다"며 "수혈 거부가 사망의 유일하거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 수혈거부행위가 사망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점만으로는 보험금 지급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미 A씨의 아내가 수혈을 받아도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는 위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꼭 수혈을 하지 못해 아내가 사망했다고 보긴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경우 보험약관에 말하는 '고의에 의한 사고'라 할 수 없다고 봤다.

◇관련법규

상법

제659조(보험자의 면책사유)
①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

제732조의2(중과실로 인한 보험사고 등)
①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에서는 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에도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② 둘 이상의 보험수익자 중 일부가 고의로 피보험자를 사망하게 한 경우 보험자는 다른 보험수익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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