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친절한 판례氏] 전셋집 주인의 '먹튀'…부동산 중개업자 책임은?

대법 "계약상 의무실현에 관여해 의무의 원만한 이행을 주선하는 것도 '중개행위'"

황국상 기자 2017.11.01 05:05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하고 대출을 받았다가 해당 주택이 임의경매로 다른 이에게 넘어갔다면 세입자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세권 등기를 하지 못해 전세보증금까지 떼였다면 재산상 손해는 물론이고 정신적 고통도 크다.

세입자가 전세계약을 맺는 과정에 중개업자가 잘못 관여해 세입자에게 손실을 끼쳤을 때 중개업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2013년 6월27일 선고, 2012다102940)가 있어 소개한다.

2010년 12월 세입자 A씨는 집주인 B씨와 전세기간 2년3개월, 전세금 1억원에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에 대한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매매가액이 1억9700만원에 달하는 이 아파트는 B씨가 단 550만원의 계약금만 지급하고 아직 완전히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해당 아파트가 B씨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A씨는 전세계약을 추진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이 때 A·B씨 사이에서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 C씨가 개입했다. C씨는 "집주인이 다른 아파트도 같이 매입했다"며 "내가 공제금액 1억원짜리 공제계약에도 가입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세계약을 체결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뿐만 아니라 C씨는 A씨가 전세권 설정계약을 체결하려고 하자 "전세권 설정등기를 하는 것은 등기비용이 많이 드니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으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일반적으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만 받는 것은 전세권 설정등기에 비해 임대차 보증금을 보호받는 데 상대적으로 취약한 방법으로 간주됨에도 이같은 권유를 한 것이다. A씨는 C씨의 권유대로 전세권 설정등기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세입자 A씨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만 받던 그 날, 집주인 B씨는 해당 주택에 근저당 설정등기를 마치고 금융기관에서 1억5600만원을 대출받았다. A씨는 전세계약 만료를 6개월 앞둔 2012년 8월 전세집이 경매로 팔릴 때가 돼서야 이같은 사정을 알게 됐다. A씨는 경매 이후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한 나머지인 4000여만원을 배당받는 데 그쳤고 전세금 중 나머지 6000만원은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에 A씨는 집주인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는 동시에 B씨와 함께 중개인 C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과 별도로 진행된 형사소송에서 B씨는 사기 혐의 유죄가 확정됐다. 문제는 C씨가 B씨와 연대해 A씨에게 손해를 물어줄 책임이 있는지 여부였다.

원심은 C씨에 대해 "임대차 보증금을 보호받지 못할 위험성이 큰 이번 계약을 중개하면서도 A씨에게 그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 위험성에 대한 대비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B씨의 말만 듣고 A씨가 B씨에게 잔금을 모두 지급하도록 방치했다"고 판단했다.

또 "임차인이 중개업자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중개를 의뢰하는 이유는 사실상 임대차 보증금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며 "C씨는 A씨가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지 않도록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거나 그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것을 조언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도 "중개업자인 C씨는 임대차계약 체결 이후에도 A씨의 잔금 지급이나 전세권 설정에 관여하면서 계약의 원만한 이행과 A씨의 임대차 보증금 반환채권 보전을 도모해야 했고 이는 중개계약에 따른 중개행위의 일환"이라고 봤다.

이어 "C씨는 집주인 B씨의 배신행위나 제3자의 선순위 취득을 확실히 방지할 수 있도록 A씨의 전세권 설정등기 신청 등을 법무사에게 위임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오히려 선순위 근저당권 유무 등을 확인할 수 없고 전입신고를 마친 다음 날에야 비로소 대항력이 생기는,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효과만 있는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 취득'이라는 방법을 A씨에게 권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A씨의 과실책임이 40% 있다고 보고 C씨의 손해배상액을 3600만원(손실금액 6000만원의 60%)으로 봤다. C씨의 말만 들을 게 아니라 A씨 스스로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관련조항
공인중개사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중개"라 함은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중개대상물에 대하여 거래당사자간의 매매ㆍ교환ㆍ임대차 그 밖의 권리의 득실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하는 것을 말한다.
2. "공인중개사"라 함은 이 법에 의한 공인중개사자격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3. "중개업"이라 함은 다른 사람의 의뢰에 의하여 일정한 보수를 받고 중개를 업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4. "개업공인중개사"라 함은 이 법에 의하여 중개사무소의 개설등록을 한 자를 말한다.
5. "소속공인중개사"라 함은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된 공인중개사(개업공인중개사인 법인의 사원 또는 임원으로서 공인중개사인 자를 포함한다)로서 중개업무를 수행하거나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업무를 보조하는 자를 말한다.
6. "중개보조원"이라 함은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로서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되어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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