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의 전쟁…퀄컴 vs 공정위, 운명을 건 '세기의 재판'

[황국상의 침소봉대] 퀄컴, 한국서 패소 땐 전세계 '도미노 충격' 올수도… 공정위도 패할 경우 치명적

황국상 기자 2018.01.18 14:48
2016년 12월2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퀄컴 서울사무소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세계적인 통신칩셋 및 특허라이선스 사업자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조300억원의 사상 최대 규모 과징금을 부과받게 됐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등에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는 지난 21일 전원회의를 열고 퀄컴의 미국 본사인 퀄컴 인코포레이티드(Qualcomm Incoporated, QI)와 2개 계열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조300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사진제공=뉴스1

"퀄컴에 대한 시정명령과 과징금 조치를 내린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해 재판부가 나서서 근거자료 등의 공개를 명령해 달라. 공정위가 갖고 있는 근거자료의 목록, 내용, 공개가능 여부 등을 밝혀달라. 이는 소송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퀄컴 측 변호사)

"재판부에 선행적 석명(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사실관계 등을 규명하는 과정)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의 소송법 체계에 반한다. 원고 퀄컴이 주장을 내놓고 서면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면 재판부가 석명권을 행사하면 된다. 공정위의 시정명령 의결서 외에 부수자료까지 다 내라는 것도 소송법 절차를 감안할 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공정위 측 변호사)

지난 15일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윤성원)에서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에 대한 퀄컴의 불복소송 변론준비기일에서 오간 공방입니다. 2016년 12월 '특허공룡' 퀄컴이 표준필수특허를 무기로 삼아 불공정거래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1조원대 과징금과 함께 △불공정 거래관행 시정 △필요시 특허이용 기업과 퀄컴간 사업계약 재협상 이행 등의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퀄컴은 지난해 2월 불복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10월말 본격적인 재판 진행에 앞서 절차적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첫 변론준비기일이 잡혔고 이달 들어 두 번째 준비기일이 열렸습니다. 본격 변론은 오는 6월, 소송이 제기된지 16개월만에 처음 열릴 예정입니다. 법정 다툼을 본격화하기 위한 준비단계에만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번 소송에는 원고인 퀄컴 측 3개사와 피고 공정위 외에도 문제가 된 시정명령이 적법하다며 공정위를 지원사격하는 삼성전자, 애플, 인텔, 미디어텍, 화웨이 등 국내외 기업 5개사가 가세했습니다. 쌍방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수만 60명을 훌쩍 웃돕니다. 퀄컴 측에만 세종·화우·율촌 등 대형 로펌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한 소송에 이 정도의 대규모 변호인단이 참여하는 건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이번 소송의 의미가 크다는 뜻입니다. 퀄컴으로서는 특허를 바탕으로 수익을 거두는 자사의 사업방식 자체가 공격을 받았다는 입장입니다. 특허에 기반한 통행료 성격의 수익을 거두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한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공정위의 행정처분에 대한 불복소송은 여타 행정기관 처분에 대한 불복소송과 달리 고등법원·대법원 2심제로 끝난다"며 "그나마도 사실관계를 충분히 다툴 수 있는 단계는 고등법원에서의 소송 한 번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실상 1심 성격을 띤 공정위 의결은 재판과 달리 피심인(퀄컴)의 주장에 대한 심리가 충분치 않았을 수 있다"며 "퀄컴 측은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 사실심리인 이번 소송에서 2016년 공정위 처분의 절차적 부당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한국이 절차적·실질적 심리를 보장해 달라고 줄곧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번 소송에서의 퀄컴 대응전략은 글로벌 차원에서 수립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소송의 결과가 단지 한국시장 뿐 아니라 퀄컴의 글로벌 시장 전체에 파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퀄컴은 그간 한국 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중국, 대만 등 주요국 경쟁당국으로부터 특허를 무기로 한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2016년 12월 한국이 공정위가 2년4개월의 조사를 거쳐 사실상 퀄컴에 첫 포문을 연 셈입니다. 

각국 경쟁당국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소송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대만 경쟁당국이 지난해 10월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퀄컴에 8억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한국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입니다. 한국에서의 소송에서 자칫 퀄컴이 패소한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법제가 다른 게 일반적이지만 경쟁법 부문은 상대적으로 국가별 차이가 적은 부문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공정위로서도 이번 소송에서 질 경우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공정위 처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지상욱 의원(바른정당)이 공정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공정위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 5건 중 1건꼴(20.4%)로 패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1조원이 넘는 거액의 과징금을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 토해내야 한다는 점도 부담요인입니다. 다른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공정위는 이번 소송에서 최종 패소할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공정위로서도 절대 패소해서는 안 되는 소송이라는 점에서는 퀄컴과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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