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법관 사찰'…檢 '직권남용' 강제수사 나설까

직권남용 혐의 여지…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지시 있었는지 조사 불가피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1.23 10:58
김명수 대법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이날 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 블랙리스트'를 작성 관리 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18.1.2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을 다수 캐내면서 이 문건의 작성과 실행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70)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미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현직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놓을 입장에 따라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할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홍승욱)는 지난해 5월 시민단체 '내부제보실천운동'이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63·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56)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조사 중이다.

◇판사 SNS 뒤지고·선거 개입까지…'법관 사찰' 현실로

법원행정처 컴퓨터 등에 대한 물적조사에 나섰던 추가조사위는 '법관의 성향과 동향' 등을 분석한 문건을 확인하고 법원행정처와 박근혜정부 청와대 사이에 재판 관련 정보교환이 있었던 정황을 밝혀냈다. 

추가조사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이던 이 전 상임위원이 연구회 내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상세한 활동 내용을 파악해 보고서 형태로 처장에게 보고한 문건이 발견됐다. 인사모 설립 당시부터 첫 모임 떄까지 집중적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주제나 결과를 넘어 발언자들의 발언내용(특정 주제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시한 법관과 발언내용, 참석자 발언, 뒷풀이 합류한 법관 등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 등까지 담겨 있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임 전 차장의 지시로 기획조정실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주최하는 공동학술대회에 대해 7차례에 걸쳐 '대책문건'을 만든 파일도 발견됐다. 앞서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2건의 파일만 제출됐다. 새로 발견된 5개 문건에는 △인권법회장의 문제제기 △공동학술대회 주제 한정 제의 △협의 불발시 회장 사임 및 고법부장 이상 회원들도 함께 탈회 △전정국장 명의 전문분야커뮤니티 중복가입 금지규정 적용 등을 통해 인권법연구회 활동을 꺼리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대안적 인권 대형 행사를 통해 인권 관련 법관들의 관심을 인권법연구회가 아닌 타 연구회로 이동시키는 등 공동학술대회 개최를 저지하기 위한 대응방안이 담겼다.

법원행정처는 2016년 3월 중앙지법 소속 박모 판사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 출마하자 "박 판사가 박모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반대글을 게시한 적이 있고, 전 우리법연구회 회원으로 2016년 사법행정위를 이용해 판사 회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핵심 그룹의 요청으로 의장 경선에 출마했다"며 "박 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 사법행정라인과 대립 가능성이 있다며 단독판사 중 최선임자인 A판사를 대항마로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를 위해 △단독판사 복지 및 실질적인 지위향상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 사법행정라인과 단독판사 사이의 실질적 가교 역할수행 등의 선거 공약 아이템을 선정하고 해당 판사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김모 기획법관, 정모 판사를 지원단으로 구성해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추천 및 지지발언을 할 판사를 섭외하는 등 선거 전략까지 작성했다.

법원행정처는 △신뢰할 수 있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출신 등 이른바 '거점 법관'을 통해 각급 법원에 대한 주기적 동향 보고 △법관들 대상 익명게시판(이판사판) 점검 △여성법관 가입한 '유스티티아' 동향 점검 △문제될 가능성이 높은 법관 관련 공개 SNS 점검(부장판사인 경우 배석판사, 참여관, 실무관의 SNS까지) 등을 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이같은 비공식적 정보수집 사실이 드러날 경우 법관사찰 등의 큰 반발이 예상된다고 적시해 위법성을 충분히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처는 법관 카페의 문제 소지가 있는 주요 게시글 및 댓글을 실제 수집하고, 자진폐쇄를 유도하기 위해 확보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회원을 가장해 활동 중단에 대한 글을 올려 카페 탈퇴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 같은 문건 작성 등은 모두 법원행정처의 직무범위 밖이다. 형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실행 여부·암호 걸린 파일 등 확인 안 돼

추가조사위는 양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부적절한 행위를 일부 밝혀냈지만 당초 추가조사위에 위임된 '조사범위' 등의 한계로 인해 완벽한 진실규명을 하지는 못했다. 우선 법원행정처가 끝내 협조를 거부해 조사하지 못한 임 전 차장의 컴퓨터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법원행정처는 심의관 등이 사용한 3대의 컴퓨터는 내어주면서도 임 전 차장의 컴퓨터는 추가조사위에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또 삭제된 파일 300개를 포함해 암호가 설정돼 열어보지 못한 '(170124)인사모 관련 검토' '(160408)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160315)국제인권법연구회대응방안검토(임종헌수정)' '(160310)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인사)' '(160407)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등 5개 파일을 비롯해 암호가 설정된 파일 760건도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아울러 법원의 판사들에 대한 '대응방안'이 실제로 시행됐는지, 인사상 불이익 등이 실현됐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추가조사위는 "정당한 절차없이 동향파악, 성향분석한 문건이 다수 발견되었다"면서도 "대응방안 실행여부 등은 조사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고위 법관이 법원행정처 문건을 단순히 보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문건 작성에 구체적으로 관여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가 불가피하다.

◇강제수사는 아직…압수수색하더라도 임의제출 유력

법조계에서는 법관 사찰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대한 청와대와의 교감 등과 관련,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관 출신 한 변호사는 "내가 알던 법원이 아닌 것 같다"며 "수사를 두려워하지 말고 무리한 과거가 있다면 털어내야 새롭게 법원이 바로 설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에 강한 반감을 보여온 일부 일선 법관들도 이번에 드러난 법원행정처의 사찰 활동에 충격을 받고 검찰 수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사 대상과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추가조사위와 달리 강제수사권이 있는 만큼 해당 문건 작성을 지시한 ‘윗선’을 추가로 밝히는 게 가능하다. 필요에 따라 관련자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당장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최소한 대법원이 자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은 이후가 될 것이라는 게 검사들의 전망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일이 엄중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자료들도 잘 살펴보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추가조사위의 발표가 났다고 바로 법원에 (압수수색) 들어갈 수야 있겠느냐"면서 "조사가 실제 이뤄진다면 영장을 발부받되 임의제출 형태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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