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사후심화" 주장하는 법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초동 살롱] "1심 신뢰도 낮아…재판받을 권리 침해" vs "판사 업무량 줄어…신속한 재판 가능"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5.14 05:00
사진=이지혜기자

이달초 변호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가운데 한 곳에 '법원의 2심 사후심화 시도에 대한 우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최근 법원이 항소심, 즉 2심을 사후심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걸 두고서입니다. 

지난 3월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워크숍'에서는 "신속한 권리구제와 충실한 심리를 위해 민사항소심을 사후심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후심이란 1심 법원의 소송자료만을 토대로 1심 판결 당시를 기준으로 원판결의 당부(當否)를 사후적으로 심사하는 재판 형태를 뜻합니다. 1심 판결 당시를 기준으로 원판결에 나타난 증거만으로 심리를 진행하며, 원판결 이후에 발생한 자료를 증거로 할 수 없고, 공소장 변경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사후심 제도는 무엇보다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심 법원의 업무량도 크게 절감됩니다. 그러나 1심에서 철저한 심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고인 구제라는 상소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없고, 무엇보다 원판결 이후에 나타난 사실이 판단자료에서 제외돼 구체적 타당성을 잃기 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항소심은 속심제로 운영되는 중입니다. 1심의 심리를 전제로 소송자료를 이어받아 1심과 마찬가지로 증거조사와 쟁점에 대해 공방을 벌이는 제도입니다. 즉 1심의 '2라운드'라고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사후심 제도와는 달리 1심 판결 이후 발생한 증거사실도 판단자료로 삼으며, 검찰의 공소장 변경도 허용됩니다. 실체적 진실 발견과 형사피고인 보호에 유리하지만 그만큼 시간과 법원의 자원이 투여됩니다.

이 때문에 항소심을 '두번째 1심'처럼 운영하는 건 한정된 소송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사후심이 도입되지 않았던 건 부실한 1심이 많아 섣불리 제도를 바꿀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찮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글을 작성한 A변호사는 이날 법원의 사후심화 움직임에 대해 △1심, 특히 단독재판부의 판단에 대한 낮은 신뢰도 △전관예우로 인한 신뢰 저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습니다.

A변호사는 "단독재판부는 판사 개개인의 도덕성과 성실성에 판단이 전적으로 맡겨져 견제수단이 전혀 없다. 형사사건은 물론 민사사건도 현행처럼 속심제도로 운용돼야 한다"면서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 한 심급의 판결이 사후심으로 뒤집힐 정도로 명백히 부당한 정도에 이르지는 않지만, 현행 속심 구조에서는 뒤집힐 가능성이 있는 경우라면 사후심으로 전환될 경우 그런 기회가 박탈당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 글에는 수십 명의 변호사들이 '공감'을 눌렀습니다. B변호사는 "2심 사후심제에 선행해 사법절차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C변호사 역시 "단독재판부의 복불복이 너무 심하고, 제대로 하려면 판사 업무량이 과도하다"며 "판사 인원을 늘리고 업무량을 줄여 한 건씩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업무량대로라면 1심 단독재판부에서 제대로 된 심리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적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4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2심의 사후심화는 국민의 권익보호와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원 편의주의에 입각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위해 수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견을 말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판사들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판결을 내린다는 건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송사를 당한 억울한 사람의 입장에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누구나 제대로 된 재판을 한 번이라도 더 받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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