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세력 처단하라"…'비밀요원'이 된 엘리트 전사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엘리트 판사'들의 법원행정처가 동료 판사 사찰 주도…'최종심급' 대법원이 신뢰 회복하려면?

이상배 기자 2018.06.07 05:00
영화 '300'으로 각인된 스파르타의 전사들은 모두 '귀족'이었다. 농지 등 재산을 가진 '자유시민'만이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오직 그들만이 무기를 소유하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스파르타의 전체 인구 중 자유시민은 약 15% 뿐이었다. 반(半)자유민이 약 30%, 노예로 끌려온 농노가 55% 정도로 절대 다수였다. 인구의 7분의 1에 불과한 자유시민이 나머지를 지배하는 전형적인 귀족정이었다. 영화에서 보듯 스파르타의 군대가 소수정예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스파르타에서 자유시민으로 태어난 남자 아이는 모두 '전사'로 키워졌다. 7세이 되면 부모와 떨어져 '아고게'(Agoge)라는 교육기관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12세가 되면 빨간 외투를 제외한 모든 옷과 소지품을 반납하고 밖에서 노숙을 했다. 음식도 알아서 구해야 했다. 음식을 훔쳐먹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러다 잡히면 심한 처벌을 받았다. 일종의 생존훈련이었다.

20세가 되면 '크립테이아'(Krypteia)라는 '비밀 정보기관'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다. 미래의 지도자감으로 선택된 '엘리트 전사'들만이 크립테이아의 요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농노들을 사찰하고 체제에 불만을 품은 농노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절대 다수인 농노들의 반란을 막는 게 목적이었다. 크립테이아 요원들에겐 어떤 농노든 마음대로 살해할 수 있는 '살인면허'가 주어졌다.

엘리트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사찰하고 생사를 좌우하는 게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허용될 리 없다. 힘을 가진 자가 힘 없는 자를 마음대로 괴롭히지 못하도록 고안된 게 근대 형사사법 제도다. 정당한 형사소송 절차를 거쳐 죄가 확정된 자에게만 공권력에 의한 처벌을 가하는 제도다. 여기엔 판사가 어떤 권력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 형사사법 제도의 정점에 대법원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대법원이 형사사법 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정 성향의 판사들을 사찰하고,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재판을 했다는 의혹이다. 그 의혹의 중심에 선택된 '엘리트 법관'들로 이뤄진 법원행정처가 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법원행정처는 차성안 판사의 재산 내역과 가정사, 이메일까지 사찰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했다는 이유였다. 상고법원 정책에 반대하는 동료 판사들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검토한 문건까지 나왔다.

'재판 거래' 의혹은 더욱 충격적이다. 특조단이 찾아낸 문건 중 하나엔 "민감한 사건 등에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했다"는 표현이 담겨있다. 실제로 그런 조율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일각에선 청와대를 상대로 한 일종의 '립서비스'였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원이 그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법원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법원은 권력기관이 아닌 권위기관이다. 판결에 대한 권위 없인 존립할 수 없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재판하는 법원의 판결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더군다나 대법원의 판결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최종심급'이다.

대법원이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단죄는 불가피하다. 다만 2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검찰이 대법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로 법원의 목줄을 쥐고, 앞으로 법원이 검찰에 휘둘려 재판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또 검찰이 기소한 뒤 상고심으로 올라온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당사자로서 판결을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막을 방법도 찾아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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