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임금의 사촌, 대통령의 복심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임금의 사촌도 처벌하라고 직언한 신하들…김경수 수사 앞둔 드루킹 특검

이상배 기자 2018.06.21 05:00

조선 태종 때 일이다. 임금의 사촌 이백온이 노비의 남편을 죽였다. 하지만 태종은 그를 용서했다. 그러자 오늘날 감사원이나 검찰에 해당하는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 이래가 임금에게 직언했다.

"옛날 중국 천자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을 때 형조에서 '천자의 아버지라도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라건대 왕실 친척이라 할지라도 법대로 처리해 원통함에 우는 영혼을 달래시기 바랍니다."

서슬 퍼런 태종 이방원도 이 말을 들고는 어쩔 수 없다. 그는 이백온에게 도성 밖으로 쫓아내는 가벼운 벌을 내렸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이래 등 신하들은 임금 앞에 엎드려 "법대로 처리해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태종은 이백온에게 곤장을 치고 멀리 함경도로 유배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사헌부 관리가 이백온을 유배지로 데려가면서 포승줄로 묶었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태종은 화를 내며 그 관리를 잡아들였다. "감히 왕실의 친척을 포승줄로 묶다니 이는 왕실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사헌부 관리는 임금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 이백온은 사람 살리기를 좋아하시는 전하의 훌륭한 덕을 더럽혔습니다. 그런 자가 도망치게 둘 수 없어 묶어서 호송했습니다." 다른 신하들도 사헌부 관리를 풀어주라고 간청했다. 결국 태종은 관리를 용서하고 풀어줬다.

다산 정약용이 형법연구서 '흠흠신서'(欽欽新書)에 소개한 이야기다. 다산은 이 일화를 전하며 "높은 왕실의 친척이 한낱 종의 남편을 죽였는데 사헌부에서 엄한 벌을 내리도록 했으니 법은 이처럼 엄격해야 한다"고 썼다.

왕보다 무서운 게 세자다. 앞으로 미래권력과 보낼 시간이 현재권력보다 길어서다.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의 신뢰를 받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복심'이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1순위인 게 그런 경우다.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남지사에 당선되며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올라섰다. 봉하마을을 끝까지 지킨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 진보진영 최초로 경남에 깃발을 꽂으며 '바보 노무현'의 꿈을 완성했다. 젊고 잘생긴데다 대통령의 신임까지 받고 있다. 이만한 잠룡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김 당선인에겐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남아있다. 이달말 시작될 '드루킹 특별검사팀'의 수사다. '드루킹' 김모씨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 수사를 이끌 허익범 특검은 "현역 도지사라도 필요하면 수사한다는 원론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김 당선인도 떳떳하다면 특검의 수사를 피할 이유가 없다.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승리하며 이미 '정치적 면죄부'를 받은 터다. 만에 하나라도 재판에 넘겨진다면 정당하게 다퉈 결백을 증명하면 된다. 설령 유죄가 선고된다고 해도 도지사 직을 내려놔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 당선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혐의는 크게 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 2가지다. 업무방해죄는 대부분 벌금형이다. 금고 이상의 형이 아니면 도지사 직을 잃지 않는다. 물론 선거법 위반의 경우엔 벌금 100만원 이상만 확정돼도 직을 상실한다. 그러나 특검이 김 당선인을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기는 건 시간상 불가능하다. 수사가 본격화되기도 전인 27일 공소시효가 끝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 당선인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는 건 특검이나 법원이 아니라 자신의 '입'이다. 만에 하나라도 의혹을 부인했던 김 당선인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다면 그는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사법적 책임'이 아닌 '정치적 책임'이다.

칼에는 눈이 없다. 특검의 칼이 사람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한치의 의혹도 남김없이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는 게 특검이 할 일이다. 김 당선인이 결백하다면 일말의 의혹까지 털어내주면 된다. 김 당선인도 대망을 위해선 오히려 그게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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