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탈 털리고 휘둘릴라"…檢 칼춤 걱정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검찰이 사법부의 약점 잡아 영장 발부 압박할 수도…檢, 언론에 흘려주기식 피의사실 유포 땐 사법부 신뢰 훼손"

한정수 기자 2018.06.21 16:17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이기범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검찰이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등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들의 PC 하드디스크를 전부 넘겨달라고 요청하면서다. 검찰은 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업무추진비와 관용차 사용 내역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모두 내어줄 경우 검찰이 다른 범죄 혐의까지 찾아내 수사하고, 이를 빌미로 사법부를 쥐고 휘두를지 모른다는 게 김 대법원장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 관계자는 21일 업무추진비 등과 관련한 자료의 제출을 요청한 배경에 대해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당시 대법관 등이 청와대에 오간 내역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통화내역 등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당시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대법관)'의 보고서에도 대법원과 청와대가 교감을 한 정황이 드러나 있는 만큼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이 조속히 자료를 제출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김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힐 때만 해도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슈퍼갑'에 해당하는 대법원을 상대로 제한적인 수준의 수사만 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18일 시민단체 등이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고발한 20건의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서 특수1부로 재배당하며 고강도 수사를 예고했다. 특수1부는 검찰 최고의 특수통들이 모여있는 최정예 '칼잡이부대'다. 검찰은 "사안의 중요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19일 법원행정처에 사법농단 관련자들의 PC 하드디스크 실물을 통째로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일부 대법관들, 법원행정처 간부 등 관계자들 모두가 대상이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진실규명 작업"이라며 "한정해서는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요청대로 PC 하드디스크와 업무추진비, 관용차 사용 내역 등을 모두 제출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검찰이 요구하는 모든 자료를 내어줄 경우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과 무관한 다른 범죄 혐의까지 포착해 별건 수사로 사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이 사법부를 탈탈 터는 식으로 수사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경우 앞으로 법원이 검찰에 휘둘릴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영장 청구와 관련해 대립각을 세워 온 법원과 검찰의 역관계가 역전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경찰이 영장청구권을 가진 미국에선 방대한 정보를 쥔 경찰이 판사의 사생활 정보를 무기 삼아 판사를 상대로 영장 발부를 압박하는 사례가 문제가 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검찰이 사법부의 약점을 잡아 영장 발부를 압박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이 대법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유포할 경우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경지법의 또 다른 판사는 "검찰이 떠들썩하게 압수수색을 하고, 사건 관계자를 공개 소환하는 등의 망신주기식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며 "의혹을 확실히 밝히는 것은 좋지만 언론에 흘려주기식의 피의사실 유포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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