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근로'…로펌 운전기사들 어쩌나

[서초동살롱] 주 52시간 근무 준수 어려운 운전기사들 '계약해지' 위기…어쏘 변호사들 '타임시트' 조작 등 '편법' 우려…

김종훈 기자 2018.06.25 05:00
/사진=머니투데이DB

300인 이상 기업의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다음달 1일 시행됩니다. 정부가 6개월 간 처벌을 유예하고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시행 자체가 유예된 건 아닙니다.

법무법인(로펌)들은 주 52시간 근로와 관련해 쇄도하는 기업들의 문의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펌들은 정작 자신들의 근로시간 문제에 대해선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달부터 곧바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받는 로펌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광장·태평양·세종·화우·율촌·바른 등 총 7곳입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로펌 구성원은 의외로 변호사들이 아닌 운전기사들이라고 합니다. 운전기사들은 수도권부터 지방 출장까지 변호사들의 발 역할을 하는데요. 변호사가 고객과 저녁 회식·접대를 할 때도 자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곤 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 5일 중 3~4일만 일해도 근로시간 52시간을 넘겨버리기 일쑤입니다. 이에 일부 로펌은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앞두고 운전기사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합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들어진 주 52시간 근무제가 역설적으로 실업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 고문 변호사는 "운전기사들을 계약 해지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잘 없을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 법에 있는 예외조항으로 인정받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달 1일 새로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제59조 제1항에 따르면 '기타 운송 관련 서비스업'은 노사합의 하에 주 52시간보다 오래 근무를 시킬 수 있는 특례직종 중 하나입니다. 로펌 운전기사들이 이 특례직종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 것이죠.

다음으로 주 52시간 근무제에 민감한 구성원들은 '어쏘 변호사'(Associate Attorney)들입니다. 로펌에 고용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주니어 변호사들을 말하는데요. 어쏘 변호사들이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대상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습니다. 이들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2012다77006)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월급을 받고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워킹파트너 변호사'들도 어쏘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52시간 근무제 적용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들의 근무시간을 어떻게 주 52시간으로 맞출 것이냐는 것인데요. 대개 어쏘 변호사들은 야근은 당연하고 주말까지 가리지 않고 일할 정도로 근무강도가 높습니다. 하루종일 고객을 만나거나 재판에 출석하고 나면 저녁이 돼서야 비로소 서면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쏘 변호사들은 '타임시트'를 작성합니다. 자신이 근무한 시간을 기록해 놓는 일종의 장부인데요.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 이 타임시트가 근무시간을 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쏘 변호사들은 52시간 근무제 도입 후 이 타임시트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가 고민이라고 합니다. 검사와 판사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사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수사와 재판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변호사도 주 52시간을 넘겨 근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타임시트에 실제 근무한 시간을 그대로 다 적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타임시트에 딱 52시간만 적어 내면 노동청에서 어떻게 볼까요? 

타임시트는 인사평가와 해외연수자 등 각종 혜택을 분배하는 근거자료입니다. 타임시트상 어쏘 변호사들의 근무시간이 모두 52시간으로 맞춰진다면 실제로 몇 시간을 일하든 모두가 같은 평가를 받게 되겠죠. 열심히 일해봐야 본인만 손해인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로펌에 "사람 더 뽑아달라"고 요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어쏘 변호사가 로펌을 상대로 이런 식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또 괜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회사가 '그럼 주 52시간 기준으로 월급도 다시 산정하자'고 나올까봐 걱정이 된다고도 합니다. 변호사의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이 다 찼다고 있는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결국 일은 일대로 하면서 월급만 깎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 어쏘 변호사는 "사실 어쏘들 사이에는 '월급 줄이는 것보다는 낫다.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로펌들이 타임시트의 근무시간을 조작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사실상 형사처벌을 받을 각오로 편법을 쓰는 것인데요. '법률전문가들이 정작 본인들은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알려지면 이미지에도 좋을 게 없죠. 

그래서 일부 로펌은 법 위반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재량근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량근로제는 실제 근로시간이 아닌 노사가 사전에 합의한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어쏘 변호사들 입장에서 이 제도가 도입되면 몇 시간을 일하든 노사가 합의한 만큼만 월급을 받아가야 합니다. 다만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노사의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하는데요. 로펌에 맞서기 어려워하는 어쏘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재량근로제 도입 추진에 대해선 합의를 거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오가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하는 국제자문은 어떻게 할지도 로펌의 고민거리입니다. 우리나라와 시차가 큰 나라의 클라이언트를 자문할 경우 한밤중에 갑자기 자문 요청을 받고 사무실로 나가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어떤 방식으로 이런 근무를 해나갈지 아직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하는데요. 한 고문 변호사는 "자문 업무에 대리 변호사를 내세울 수도 없고, 앞으로 이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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