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빌려 거래하고 세금계산서까지…그런데 무죄?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김용택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8.07.19 05:15
그래픽=이지혜 기자

A는 B의 명의를 빌려 고철(古鐵) 공급사업을 하면서 고철공급거래를 하고, B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 왔다.

이에 대해 검찰은 B가 개입된 부분에 관해 실제 거래 없이 세금계산서만이 수수되었다고 보아 A에 대해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3항을 적용하여 가공거래 세금계산서 수수 혐의로 기소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이유는 이렇다. 재화 등을 공급하는 사람이 제3자의 명의를 빌려 제3자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경우, 이름을 빌려 준 제3자(B)가 아니라 실제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거래행위를 한 사람(A)을 세금계산서 발급 및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의 주체로 보아야 하므로, 그 납세의무자(A)가 비록 제3자(B)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였더라도, 실제로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내용의 수량 및 가격으로 재화를 공급한 이상 당해 거래를 가공거래, 즉 거래 자체가 없는 경우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A에 대해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1, 2항에 따른 거짓 기재 세금계산서 수수행위죄나 제11조 제1항에 의한 명의대여행위죄로 처벌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아예 거래 자체가 없었음에도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3항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수수된 경우 세법상 관련 부가가치세 과세나 가산세 부과의 제재와는 별개로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이에 관해 조세범처벌법 등은 행위유형별로 나누어 처벌규정 및 형량을 달리 정하고 있다.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1, 2항은 실물거래는 있었으나, 실제 거래내용과 다르게 거짓으로 기재된 세금계산서를 수수하거나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은 경우를 처벌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한 형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세금계산서에 기재된 공급가액에 따른 부가가치세액의 2배 이하의 벌금이고, 이는 특정범죄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른 가중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3항은 실물거래 없는 가공거래(무거래)에서 세금계산서를 수수한 경우를 처벌대상으로 하고, 이에 대한 형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관련 부가가치세액의 3배 이하의 벌금으로서, 정상에 따라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할 수도 있다. 나아가, 세금계산서상 공급가액의 합계액이 3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특가법 제8조의 2에 따라 1년 이상의 징역 및 관련 부가가치세액의 2~5배의 벌금을 필요적으로 병과한다.

이처럼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수수된 경우, 아예 거래 자체가 없었던 가공거래인지 여부에 따라 처벌근거규정 및 형량에 큰 차이가 있다. 위 사안에서 A는 B의 명의를 빌려 세금계산서를 발급했으나 실제로 고철공급거래를 하였고 단지 발급명의자를 사실과 다르게 기재했을 뿐이므로, 형량이 무거운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3항이나 특가법 제8조의 2의 적용은 피할 수 있었다. 명의를 빌려 거래한 것만으로는 가공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중간거래업체를 건너 뛴 채 물품이 납품된 경우에도, 단지 그러한 납품실태만을 이유로 가공거래로 단정해서 형사처벌하거나 가산세 제재를 해서는 안된다는 판결도 나왔다.

사안은 이렇다. 당초 甲과 乙은 직접 물품공급거래를 하다가, 사업상 필요에 따라 丙을 개입시키기로 하고 ‘甲 → 丙 → 乙’의 구조로 거래를 개편하였다. 그 거래내용에 따라 각 단계별로 세금계산서도 수수되었다. 이에 대해 과세관청과 수사기관은 실제로는 물품이 중간거래업체인 丙을 건너 뛴 채 ‘甲 → 乙’으로 곧바로 인도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丙이 개입된 거래를 가공거래로 보아 甲과 丙을 조세범처벌법 제10조 제3항의 가공거래 세금계산서 수수죄로 기소하는 한편, 고율의 세금계산서교부불성실 가산세를 부과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물품의 실제 납품과정에서 중간거래업체를 거치지 않고 최종매수자에게 바로 배송되는 경우를 이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그러한 사정만으로 중간거래업체가 개입된 것을 가공거래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고, 최근에는 관련 조세소송에서 가산세 부과처분마저 취소되었다.

부가가치세법상 재화의 인도여부를 기준으로 공급시기 및 과세시기를 파악하더라도, 여기서 ‘인도’란 재화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 즉 점유를 현실로 이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민법상 간이인도, 점유개정, 목적물반환청구권의 양도와 같이 현실적인 재화의 이전 없이 약정만으로 재화에 대한 점유를 이전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위 사례에서 법원의 판단 역시 반드시 현실적인 물건의 이동까지 이루어져야만 재화의 인도, 즉 가공거래가 아닌 실물거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가공거래에 대해서는 세법은 물론이고 형사법적으로도 가혹한 제재가 가해진다. 따라서 가공거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김용택 변호사는 조세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분야다. 각종 소득세, 법인세 관련 사건 외에도, 자본거래 관련 증여세, 금괴 도매업체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지방세 환급 및 추징, 조세포탈 관련 사건 등을 수행했다. 서대문세무서 납세자보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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