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특활비 수수' 형량 6년…검찰 구형의 절반 나온 이유는

재판부, "뇌물공여 동기 수긍 어렵다"…직무관련성 인정 안 해…"국고손실죄만 인정

김종훈 기자 2018.07.20 16:34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고 옛 새누리당의 선거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건과 공천개입 사건을 합쳐 1심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특활비 수수 사건 하나만 따져도 징역 12년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뇌물죄가 인정되지 않아 형량이 줄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20일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 선고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특활비 사건 선고 형량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12년의 절반인 징역 6년으로 정해졌다.

형법에 따르면 뇌물죄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대해 금품을 수수, 요구 약속했을 경우 성립한다. 이때 해당 공무원이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는지, 공무원과 금품제공자가 어떤 관계였는지 등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다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무와 대가성이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아도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금품이었다는 점만 인정되면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다.

재판에서 검찰은 특활비가 전달된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국정원이 대선개입 사건, NLL(북방한계선) 대화록 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등 여러 현안을 떠안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토대로 남재준·이병호·이병기 국정원장들이 현안 해결을 기대하고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뇌물로 건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수수한 특활비에 검찰이 주장한 것과 같은 직무관련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직 국정원장들이 직무수행에 있어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것은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현실적인 뇌물공여 동기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울러 “국정원장들이 특활비를 지급하기 시작할 때부터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한 현안이 있었다는 증거도 부족하다”며 “국정원장들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예산을 지원한다는 의사로 특활비를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특활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했음에도 사실상 일방적으로 사임 통보를 받거나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사례도 있다”며 반례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당시 주변 정황에 비춰봐도 특활비를 뇌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활비를 전달한 실무자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게 은밀한 방법을 이용한 것 같기는 하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이나 국정원장들이 이런 방식을 지시한 것 같지는 않다. 실무자들도 자금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달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을 뿐 뇌물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또 “특활비는 규모가 상당하고 언제든 아무 증빙 없이 쓸 수 있다. 이를 피고인에게 한꺼번에 지급하지 않고 매달 장기적, 정기적으로 지급하면 국정원 내·외부에 알려질 위험이 높다”며 “은밀하게 수수되는 뇌물교부 방식과 비교해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라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특활비 수수는 국가예산 횡령에 해당한다며 국고손실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자금지원이 적법한지 확인도 없이 권한을 남용, 자금을 요구해 지속적으로 국고가 손실되게 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과 ‘문고리 3인방’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비서관도 같은 판단 아래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 유죄를, 뇌물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이날 선고받은 형기는 공천개입 사건에서 선고받은 징역 2년을 합쳐 징역 8년이 됐다. 앞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선고받은 징역 24년을 합치면 현재 형기는 징역 32년이다. 보통 한 피고인이 여러 개의 범죄로 기소됐을 경우 법원은 각 사건을 병합한 뒤 형법상 경합범으로 보고 가장 무거운 죄목을 기준으로 형량을 정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처럼 각 사건 선고가 따로 이뤄진 경우 형량은 각 선고 형량을 모두 더한 값이 된다.

이 때문에 선고를 따로 받는 것보다 사건을 병합해 한 번에 선고를 받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과 특활비 사건, 공천개입 사건 선고가 한 번에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다른 사건과 병합하더라도 선고는 따로 내야 한다. 국정농단 사건은 다음달 24일 선고를 끝으로 2심 재판이 끝난다. 대법원에서는 사건을 병합하지 않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추후 상급심 재판에서도 따로 선고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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