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친절한 판례氏] "결혼 전 파혼에도 위자료 있나요?"

투자금 문제로 다툼 후 일방적 파혼…법원 "금전으로나마 위로해야"

김종훈 기자 2018.08.21 05:05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이혼은 이제 '흉'이 아니라 누구나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는 '인생 경험'으로 여겨진다. 파혼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지난해 미혼 성인남녀 314명(남성 148명, 여성 1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 전 미래 배우자에게 치명적 결함이 발견된다면 파혼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3%가 '파혼하겠다'고 답했다. 

파혼을 고려할 만큼 치명적인 결점이 무엇인지 묻자 응답자의 52%가 '전과이력'을 꼽았다. 이어 채무(21%), 동거 경험(11%) 순이었다. 과거에는 뒤늦게 이런 것들을 알게 돼도 '흠없는 사람이 어딨냐'며 덮어두고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파혼도 감출 필요 없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이혼하겠다며 법정으로 온 부부들은 위자료를 갖고 가장 많이 다툰다. 위자료를 달라는 쪽에서는 그동안 참고 살았던 시간을 돈으로라도 보상받겠다고, 못 주겠다는 쪽에서는 나도 많이 참고 살았다고 언성을 높이곤 한다. 그렇다면 결혼하기도 전에 파혼한 경우도 이혼처럼 위자료를 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 민법과 2014므2530 판결 등 판례에 따르면 파혼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원고 A씨는 1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으며 일하던 직장인 여성이었다. A씨는 2011년 중매로 남성 B씨를 만났다. B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다 월 19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설비업체에 재직 중이었다. A씨는 만남 첫날 자신이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것,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 등을 말했다. 

또 A씨의 어머니는 무속인이었는데, 이에 대해 A씨는 '어머니가 불교에 심취해 있다'고 밝혔다. 이날 B씨는 아무 것도 문제삼지 않았고 두 사람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

바로 다음날 A씨는 B씨를 다시 만났다. A씨는 이번엔 과거 사업실패로 집안이 어렵다는 것, 큰언니의 빚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전세로 살던 아파트에서 나와 투룸 오피스텔로 이사한 것, A씨 본인의 빚도 갚아야 해 월급이 온전히 수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털어놨다. B씨는 이에 대해서도 별말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첫 만남 후 5일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곧 두 사람은 결혼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진행했다. 웨딩드레스, 촬영 계약도 잡고 다이아몬드 예물도 맞췄다. 이 과정에서 B씨는 A씨의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A씨가 투자한 오피스텔을 둘러싸고 다툼이 시작됐다. 투자금 6600만원 중 4000만원이 대출금이었는데, 오피스텔 공사가 제때 시작되지 않았다. B씨는 왜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투자했냐고 A씨를 질책했다. 그러면서 시댁에서 지원해준 1억5000만원으로 빚을 먼저 갚고 A씨의 투룸 오피스텔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A씨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투자금 빚 4000만원에 다른 빚 5000만원이 더 있긴 하지만, 투룸 오피스텔 보증금 9000만원이 있어서 괜찮다고 판단했다. A씨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B씨는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했다. 이에 A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파혼당했다며 B씨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B씨는 "A씨 어머니가 무속인인 데다 그 가족들 채무를 감당할 수 없다"며 파혼을 A씨 책임으로 돌렸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는 교제 과정에서 어머니 직업과 가족들 채무를 밝혔고 B씨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A씨의 귀책사유로 약혼이 해제됐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는 약혼이 해제돼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 명백하다. B씨는 금전으로나마 A씨를 위로할 의무가 있다"며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B씨의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1000만원으로 줄였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관련조항

민법
제804조(약혼해제의 사유) 당사자 한쪽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은 약혼을 해제할 수 있다.
1. 약혼 후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2. 약혼 후 성년후견개시나 한정후견개시의 심판을 받은 경우
3. 성병, 불치의 정신병, 그 밖의 불치의 병질(病疾)이 있는 경우
4. 약혼 후 다른 사람과 약혼이나 혼인을 한 경우
5. 약혼 후 다른 사람과 간음(姦淫)한 경우
6. 약혼 후 1년 이상 생사(生死)가 불명한 경우
7.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을 거절하거나 그 시기를 늦추는 경우
8. 그 밖에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제806조(약혼해제와 손해배상청구권) ①약혼을 해제한 때에는 당사자 일방은 과실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이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②전항의 경우에는 재산상 손해외에 정신상 고통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
③정신상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양도 또는 승계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사자간에 이미 그 배상에 관한 계약이 성립되거나 소를 제기한 후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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