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1년…위기의 리더십

[서초동살롱]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9.17 05:00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규명해 줄 것으로 믿는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대법원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 가운데 열린 지난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렇게 '영장 기각' 논란을 피해갔다.


최근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일선 법원이 잇달아 영장을 기각하며 '수사 무력화 논란'이 벌어지는 터다. 그러나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인 김 대법원장의 이날 발언은 침묵과 다름없었다.


김 대법원장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면서도 재판거래 의혹, 사법행정권 남용, 법관 사찰 등 그 어떤 단어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저 ‘최근 현안’이란 두루뭉술한 표현을 썼을 뿐이다. '사법부 수장'의 무거운 한마디가 기대된 상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다.


김 대법원장이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그의 발탁은 파격 그 자체였다. 비(非) 대법관 출신인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보다 13기수나 아래였다. 법관의 엘리트 코스인 법원행정처 출신도 아니었다. 그가 '사법개혁'의 적임자로 지목된 건 그래서였다.


기대대로 김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과감한 사법개혁에 나섰다. 대법관 제청과 헌법재판관 지명 등 인사권을 내려놨다. 대신 국민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법원행정처도 대법원에서 분리하겠다고 했다. 공개변론 등 국민과의 소통 강화도 약속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의 사법개혁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사법부는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대상이 됐다. 판사들은 대법원을 압수수색하라는 영장을 제 손으로 발부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법관사찰에서 시작된 의혹은 재판거래를 넘어 비자금 의혹으로까지 확대됐다.


법원에선 김 대법원장이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특별조사단을 만들어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에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제3차 조사를 맡긴 건 김 대법원장이었다. '사법처리 할 것이 없다'고 본 특별조사단과 달리 김 대법원장은 여지를 남기고 시간을 끌었다. 당시 사법발전위원회와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대법관 전원과의 간담회까지 거친 김 대법원장은 직접 고발은 하지 못한 채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만 했다. 


이후 검찰의 칼바람은 날로 거세졌다. 검찰의 칼끝이 어디까지 이를지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일선 판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김 대법원장의 입에 눈길이 쏠린 이유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메시지도 던지지 않았다. 리더십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된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식' 이후에도  검찰이 청구한 영장은 법원에서 추풍낙엽처럼 기각됐다. 검찰 주변에선 전·현직 법관들 사이에 ‘수사 무력화 카르텔’이 구성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전적으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영장의 발부가 결정된다고 믿고 싶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검찰 수사를 마뜩잖아 하는 법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이며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흔들리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낱낱이 밝히고, 책임질 사람은 법원을 떠나든 형사처벌을 받든 해야 한다. 그게 대법원이 신뢰받는 '정의의 최종심급'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치 부역자 숙청 반대론에 맞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남긴 말이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