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도 관용이 있어야"…'한국판 장발장' 풀어준 판사

[판사 사용설명서-이영진 헌법재판관]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11.02 04:01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의 삶을 그린 영화 '자백'. 주인공 중 한명의 실제 모델인 재일교포 김승효씨는 1974년 서울대 유학 도중 북한의 지령을 받아 학생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김씨는 올해 재심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지난 8월 40년만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김씨의 재심청구를 받아준 판사, 김 장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바로 이영진 헌법재판소 재판관(57·사법연수원 22기)이다. 

바른미래당은 이 재판관을 지난 9월 헌재 재판관 후보자로 추천하면서 "공권력의 남용방지와 기본권 보호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8일 취임한 이 재판관을 사석에서 만났다.

◇"사법농단 사건은 법원행정처 관료화 때문"

이 재판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당시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유착, 일선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의 관료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재판관은 "사법농단이란 용어가 적절한지 여부는 논란이 있으나 대단히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다. 동료들이 수사기관 가서 조사받는 걸 보면 참담하다"며 "결국 상고법원 제도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윗분들' 지시에 따라 최선을 다하려 한 측면이 있다.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했다. 

이어 "인사권자에게 자신의 사법철학 실현을 위해 법원행정처를 구성할 재량과 자유는 있더라도 아랫사람이 최상급자에게 진언할 환경이 됐어야 했는데 법원행정처가 관료화되고 경직돼 있었다"며 "사태가 여기까지 온 건 행정처의 관료화를 표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법관료화의 원인으로 '기수 문화'를 꼽았다. 사법연수원 시절 '배출 기수'를 따지던 문화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도 복종하도록 행정조직을 관료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상급심으로부터 독립하고, 위의 선배들로부터 독립해서 재판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조직 전체가 기수 문화에 몰입돼 있어요. 법원조직법상 판사의 직급은 판사, 대법관, 대법원장 셋뿐인데, 실제로도 이렇게 가야 한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없애야 된다. 다행한 것은 최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법조인들이 법원으로 유입되면서 기수문화가 다소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맡은 바 업무에 대해 서열 관계 없이, 소신과 신념대로 독립해서 재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대하고 있다."

헌재가 법원의 판결을 심판하는 '재판소원'을 인정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이 재판관은 '조건부 긍정' 입장을 밝혔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법원의 재판을 심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재판 역시 법원이 국가기관인 이상 공권력 행사의 일종으로 봐야 하고, 일부 위헌적 재판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심판할 길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법원의 재판은 헌재의 심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다. 그럼에도 법이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돼 위헌적 요소가 있는 경우 법원의 판결도 재판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소수지만 재판소원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헌재가 위헌으로 판단한 법을 적용한 재판 등이 그 예다. 다만 4심제로 볼 소지가 없도록, 재판소원을 예외적으로 인정할 사건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는 법도 '최소한의 관용'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유달리 이 재판관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이 '한국판 장발장' 사건이다. 그가 고등법원 형사부에 있을 때다. 중소기업을 다니던 20대 가장이 실직한 뒤 자녀 2명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을 훔치려다 붙잡힌 사건을 심리했다. 도주하려던 가장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과도가 밑으로 떨어지면서 주인의 발등에 상처를 냈다. 젊은이는 단순 절도죄가 아닌 강도상해죄로 기소됐다. 최소 징역 7년의 중죄다.

"그 사람을 징역 보내면 가족은 굶어 죽는다. 상해 부분이 경미하고 자연치유되는 경우 상해가 아니라는 판례가 있다. 상해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 사실조회를 했고, 이건 상해가 아니라는 결론을 통해 집행유예 판결을 냈다." 

그러나 이 재판관은 사형제 만큼은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임관 후 배석판사로 근무한 청주지법에서 사형 선고에 세 차례 관여했다. 사형제 존치에 찬성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엔 중압감을 느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또 오심의 여지가 없는 흉악범죄의 경우라면 최근 논의되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과 같은 징벌은 피해자의 심리를 고려하지 못한 방안이 아닌가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은 존엄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든다." 다만 그는 국민언론도 고려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그는 스스로를 '중도'라고 부른다. 이 재판관은 "특정 이념에 매몰돼 재판한 적은 없다"며 "사안의 판단에 따라 진보, 보수적 시각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나 적어도 재판할 때는 증거에 대해서만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사진=홍봉진기자

◇"본래 강단에 서는 게 꿈…부친 덕에 판사로 진로 바꿔"

그의 어릴 적 꿈은 교수였다. 논문을 쓰고 가설을 연구·검토해 결론을 내리는 일이 좋았다고 했다. "학설을 논쟁하고, 그 결론에 따라 실무가 점차 바뀌는 게 보이는 학계가 취향에 맞았다. 특히 헌법. 저는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서 기본권 보장이 안 되고 살기 힘들다고 느꼈는데, 그 당시 미국 판례를 보면 미란다 원칙이라든지 언론의 자유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같은, 당시 엄혹했던 우리나라의 현실과 다른 이상에 매료됐다. 헌법학 박사 과정까지 간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충남 홍성 출신이다.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으로 '헌법상 의회의 대정부견제권', 박사논문으로 '종교의 자유의 한계와 정교분리에 관한 연구'를 썼고, 이밖에도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

이 재판관은 강단에 서기 위해 헌법을 전공하며 유학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일단 유학갈 돈이 없었다. 부친이 사법시험을 치지 않고 교수가 되는 걸 염려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원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쳤다. 결과가 나와서 임관한 후에 교수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는데, 하나보니 판사로 쭉 일하게 됐다." 그는 제32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제22기를 수료하고 1993년부터 25년간 법관으로 근무했다.

이 재판관은 '국회 1호 전문위원 판사'이기도 하다. 2009년 18대 국회에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파견돼 2011년까지 일했다. 판사가 전문위원으로 간 건 그가 처음이었다. 전문위원은 계류 중인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쓴다. 제안한 이유와 법안의 내용, 그 효과와 위헌 여부 등을 검토한다. 당시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사표를 쓰고 국회에 전문위원으로 가야 했다. 집안의 반대가 강했지만 그는 "입법과 사법 구성원들의 교류가 필요하다"며 결국 갔다. 그는 "다녀와서 실제로 법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이영진 헌법재판관 /사진=홍봉진기자

◇"헌재가 '헌법의 우산' 펴는 존재 돼야"

그의 평소 취미는 등산과 독서다. 산은 대학 다닐 때부터 탔다. 오대산과 지리산, 강원도 홍성 주변에선 용봉산과 가야산·덕숭산에 올랐다. 최근에도 지인들과 마이산에 올랐다. 책은 나태주 시인·정호승 시인의 시집이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 고전을 즐긴다.

최근 이 재판관이 읽은 법서는 '법은 누구의 편인가'(러셀 갤러웨이, 안경환 역)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 흐름을 다룬 역사서다. 이 책은 법원이 시대에 따라 부자의 시녀, 가난한 사람의 대변인, 이익집단 간의 조정자 등 여러 얼굴을 보여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 헌재는 그에게 어떤 모습일까.

이 재판관이 생각하는 우리 헌재의 모습은 '헌법의 우산'을 펴는 존재다. "잘못된 공권력이 폭풍우처럼 몰아칠 때 헌법이라는 우산을 펼쳐 막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헌재다. 국민이 받는 차별이 국민에게 주어진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아리송할 때 이를 펴면 된다." 

그는 다수의 이름으로 특정 소수를 차별하는 문제에 있어 국민 여론도 고려하되 개개인이 받는 차별의 정도, 고통의 정도 역시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낙태죄·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문제는 '개인의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고통받는 사안'이라고 봤다.

그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발과 관련해 '법관 자격' 제한이 철폐돼야 하고, 여성 등 소수자의 비중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 재판관은 "헌재는 다양한 가치를 조정하는 곳인 만큼 여러 계층에 있는, 여러 경험을 가진 분이 참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낙태죄 사건 등 여성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고, 최근 성평등 기류나 공직자 남녀동수 참여의 가치를 고려하면 여성 재판관이 더 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헌재엔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재판관 2명(이선애·이은애 재판관)이 동시에 재직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헌재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사건, 군형법상 군대 내 동성애 처벌 사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조항 관련 사건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주요 사건들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재판관은 "우리 헌법은 최상위 규범이다. 모두가 존경하고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생활에 헌법의 정신이 잘 미치고 있지 않다"며 "기본권 보호 사상이 사회 곳곳에 미칠 수 있는 결정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좌우명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취미 : 등산 
주량 : 소주 1∼2병
최근 읽은 책 : '데미안', '새들은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
논문 : 종교의 자유와 실정법 위반, 행정소송법상의 원고적격, 형법상 상해의 의의와 강간·강제추행치상죄에 있어서의 경미한 상해의 취급, 종교의 자유의 한계와 정교분리에 관한 연구(박사), 의료과오소송과 최근판례의 동향, 사법권과 종교단체의 내부분쟁, 선진 각국의 성년후견제도 운영실무와 절차, 헌법상 영토·통일조항의 개정논의와 남북특수관계론, 바람직한 조정기법과 조정기일의 운영, 영국의 사법제도와 그 시사점, 국가면제에 관한 실무적 연구 - 위안부 피해배상소송과 관련한 각국의 판례비교, 납골당설치신고반려처분 취소판결 후 재반려처분의 적법 여부 등

△충남 홍성 △남강고 △성균관대 법학과 졸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32회 사법시험 합격 △법원행정처 사법정책담당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헌법재판소 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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