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1등 인생' 판사들의 민주주의

김종훈 기자 2018.11.07 05:00
판사 대부분은 법복을 입기 전까지 ‘1등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법원이라는 조직에 들어온 이상 우열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사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는 판사는 요직으로, 그렇지 않은 판사는 한직으로 빠진다. 승승장구하는 동료를 향해 박수 쳐주는 이도 있겠지만 질투하는 이도 적잖다. 이런 법원 분위기의 일면을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재판부는 원래 총 59개로, 생활형·중액·고액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중 생활형 단독은 이름처럼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2016년 신설됐다. 한 번 변론으로 재판을 끝내고 2주 안에 선고를 내리는 식으로 한 달에 최대 13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했다. 여기서 근무하려면 손이 빨라야 했다. 자연히 일 잘한다는 판사들이 생활형 단독으로 배치됐다.

그런데 이 생활형 단독부가 지난 3월 폐지됐다. 중앙지법 일선 판사들이 참여하는 사무분담위원회의 의사에 따라 민사단독재판부 숫자가 51개로 줄고 생활형·중액·고액이 중액단독으로 통폐합됐다. 그러면서 사건 처리 실적이 크게 감소했다. 생활형 단독이 없어진 후인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민사단독에서 처리한 사건 수는 2만2308건이었다. 지난해 3~10월과 비교했을 때 약 20%(5918건) 감소했다. 그만큼 재판 진행이 안 됐다는 뜻이다.

법원 측은 인력 부족 때문에 민사단독 재판부를 줄였고, 그 과정에서 실적이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면 생활형 단독 같은 효율적인 재판부를 보강해야지 아예 없애버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인정받은’ 동료를 시기하는 ‘사심’이 개입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이후 법원 내 상급자들과 일선 판사들 사이의 권력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이 사건처럼 일선 판사들에게 인사권을 열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판사의 이해타산과 사심이 개입한다면 그 명분은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이는 또 다른 사법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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