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간은 여기 발 붙일 자리가 없다"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나치 부역자 청산으로 적폐 완전히 씻어낸 프랑스…'사법농단 의혹' 판사 8명, 아직도 현직에

이상배 기자 2018.12.13 05:00

"복수는 허무한 짓이지만, 어떤 인간들은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에 발 붙일 자리가 없다."

1950년 프랑스, 나치 부역자 청산이 한창이던 때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한 말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였던 보부아르는 당대 최고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프랑스 지식인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나치 독일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와 나치에 협력한 '콜라보라시옹'.

1945년 종전 직후 프랑스 각지에서 약 1만명에 달하는 나치 부역자들이 재판도 없이 처형됐다. '잔혹한 광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무리 부역자라 해도 재판도 거치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건 지나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가 공식 조사에 나섰다. 1950년부터 3년간 나치 부역자 35만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12만명 이상이 법정에 섰다. 이 중 3만8000여명이 수감됐고, 1500여명이 처형됐다.

이때도 국론은 양쪽으로 갈라졌다.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과 '용서'를 촉구하는 이들. 당시 정의를 위해 철저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지식인이 보부아르와 소설가 알베르 카뮈 등이었다. 카뮈는 "우리의 내일을 보장해주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에 근거한 정의 자체"라고 했다.

광범위한 부역자 청산 작업을 통해 프랑스는 나치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고 민족적 자존감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당시 보부아르와 카뮈가 요구한 건 증오에 기반한 '복수'가 아니었다. 그들이 강조한 건 공동체에서 암적 존재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당위였다. 그래야만 정의가 살아있다는 교훈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부역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할지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바깥 세상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 나치에 적극 협력한 비시정부의 수반 필리프 페탱은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결국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이후 복역 중 1951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재판 개입 등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 13명에 대해 대법원이 징계를 검토 중이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4명과 지방법원 부장판사 7명, 평판사 2명이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 3일 이들에 대한 3차 심의기일을 열었지만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법관징계법상 판사에 대한 징계는 정직·감봉·견책 등 3가지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징계를 통해 법복을 벗게 할 순 없다. 헌법 제106조 1항에 따르면 법관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법관 탄핵이 논의되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이 13명 가운데 8명이 여전히 현직에 남아 법정에서 재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 업무에서 배제돼 사법연구 등의 보직으로 좌천된 건 5명 뿐이다.

이들에 대한 징계나 탄핵은 검찰 수사나 재판을 통해 혐의가 분명하게 확인된 뒤 해도 늦지 않다. 형사 처벌도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윗선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가담한 일이라면 윗선에 책임을 무는 게 먼저다.

그러나 이들이 현직 판사로서 법정에 계속 들어가 법대 위에서 재판을 하게 놔두는 건 다른 문제다. 징계 결정 전이라도 재판 업무에서 배제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과를 미리 정해둔 엉터리 재판에 관여한 판사들이다. 이런 판사들이 계속 재판을 하게 놔두는 사법부를 누가 신뢰하겠나? 

가뜩이나 사법신뢰가 바닥까지 추락한 터다. 판결에 불복한 70대 노인이 현직 대법원장이 탄 차량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상상하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복수는 허무한 짓이다. 그러나 어떤 판사들은 신뢰받는 사법부의 법정에 발 붙일 자리가 없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