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달라" vs "다 못 준다"…'사법농단' 임종헌 첫 재판 '신경전'

증거기록 열람 등사부터 날 세워…공소장일본주의 위반 주장도 제기

김종훈 기자 2018.12.10 16:11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뉴스1

재판개입 등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ㆍ사법연수원 16기)의 첫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사건 기록의 제공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10일 오후 2시 임 전 차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였다. 공판준비기일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을 확인하고 재판계획을 짜는 절차다. 임 전 차장은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은 미리 검찰에서 사건 기록을 복사·검토한 뒤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혐의를 인정할지 여부를 밝힌다. 그러나 임 전 차장 측은 이날 법정에서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이 사건 기록 열람·복사를 상당 부분 제한하고 있어 기록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섣불리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취지다.

검찰은 "지장 없도록 안내했는데 변호인이 사정이 있어서 못한 것 같다"고 해명하자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변호인은 "검찰은 기록 열람·등사 범위를 전체의 40% 정도로 제한하려 하는데 40%는 의미가 없다. 증거라는 것은 진술조서와 서류증거를 연계해서 봐야 의미가 있다"며 기록 전체를 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현재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임 전 차장의 상급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고, 기록을 전부 넘겨줄 경우 수사정보 유출과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어 기록 열람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변호인 측에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증거는 대부분 열람·등사를 허용했다며 먼저 허락된 기록들을 검토해보고 의견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증거의 중요성은 검찰 판단에 따른 것이고 변호인은 사소한 증거라도 놓칠 수 없다"며 "언제 전체 기록을 열람·등사해줄 수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 순리"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바로 다음 재판까지는 변호인 측에서 모든 기록을 받아볼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보 유출 가능성을 다시 거론하며 난색을 표했다.

'공소장일본주의'도 문제가 됐다. 공소장일본주의란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해야 하며 이 공소장에는 피고인의 범죄사실과 관련이 있는 내용만 기재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재판 시작 전 재판부가 최대한 '백지' 상태가 돼야 선입견 없이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을 일일이 짚어가며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을 주장했다. 변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사이와 한일 관계 악화나 일본군 '위안부' 몇 분이 생존하고 있다는 등의 사실은 공소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다"며 "공소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재판부가 예단을 갖게 하는 검찰의 의견이 광범위하게 나열돼 있으므로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을 인정하고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공소장일본주의는 공소사실 특정 문제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라며 "이 사건은 수년 간 은밀히 이뤄졌고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 (주변사실을 기재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의 범죄혐의가 워낙 방대해 정확히 설명하려면 범죄혐의 외 주변사실들도 일부 공소장에 담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1시간쯤 양측의 주장을 들은 뒤 기일을 끝내고 17일 오후 2시 열릴 2회 공판준비기일에서 나머지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재판부는 19일 오후 2시에 3회 준비기일을, 26일 오후 2시에 4회 준비기일을 열 계획이다. 다만 수사기록 열람·등사 문제로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임 전 차장의 범죄혐의는 약 30개에 이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등을 놓고 '재판개입'를 시도했다는 등 직권남용 혐의가 핵심이다. 또 박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특허소송 관련 정보를 수집해 공무상 기밀을 누설하고,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의 예산 3억5000만원을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