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이 잘못하는 건 너의 잘못이다"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다산 정약용 "주동자만 엄히 다스리고 추종자는 관대하게 처분하라"

이상배 기자 2018.12.27 05:00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재상 계강자가 부속국인 전유를 치려고 했다. 그러자 신하인 염유와 계로가 공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계강자가 전유를 상대로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염유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염유가 깜짝 놀라 말했다. "계강자가 하려는 것이지 저희 두 가신은 모두 원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주나라 사관으로 알려진 주임의 말을 인용하며 타일렀다. "능력을 펼쳐 자리에 나아가되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만두라고 했다.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엎어지는데도 붙들지 않는다면 그 신하를 어디에 쓰겠느냐? 호랑이와 코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거북껍질과 옥이 궤 안에서 훼손됐다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윗사람의 잘못을 막지 못하는 것은 아랫사람의 잘못이라는 뜻이다. 가혹한 얘기처럼 들린다. 윗사람이 귀를 닫고 밀어붙이는 일을 아랫사람이 어찌 다 막을 수 있을까? 그걸 막지 못했다고 아랫사람을 탓한다면 책임을 피할 사람이 있을까?

막을 수 없을 땐 그만 두라는 게 공자의 말씀이다. 설마 직언이 먹히지 않을 때마다 무조건 사표를 던지란 뜻은 아닐 것이다. 윗사람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려 하는 결정적인 순간엔 직을 걸고 막으라는 얘기일 터다. 그게 참모된 도리라는 뜻일 게다.

당시 계강자는 노나라 땅의 약 절반을 차지한 절대 권력자였다. 전유는 노나라를 섬기는 조그만 위성국가였다. 영토가 사방 50리 안팎에 불과했다. 그런 전유를 치는 건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는 게 공자의 생각이었다. 공자의 말을 들은 염유와 계로는 어떻게 했을까? 이들이 직을 걸고, 목숨을 바쳐 간언을 했기 때문인지 실제로 계강자가 전유를 쳤다는 기록은 역사에 없다. 

보스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부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딜레마다.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막으려 했다가 험한 꼴만 당할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그냥 못 이긴 척 따라줘도 다행히 별 탈이 없을 수도 있다. 때론 그걸 막지 못한 죗값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운이다.

"인사실에서 막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처장님의 강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3년 전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이 작성한 '정기인사 후기'에 담긴 내용이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박병대 전 대법관이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당시 행정처는 일부 판사들에게 해외 파견 배제 등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다. 상고법원 도입을 비롯한 당시 양승태 대법원의 정책에 반기를 든 판사들이 타깃이었다.

실무진은 반대했지만 '윗선'의 의지는 확고했다. 훗날 문제가 될 걸 예견했을까. 인사 실무를 맡은 판사들은 '정기인사 후기' 문건에 스스로 '면죄부'를 남겼다. "법관 인사는 인사실에서 각종 기초자료를 작성하지만 처장님이 인사안을 짜서 내려주신다."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실무진의 책임이 사라질까.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박 전 처장은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로 그런 지시를 내렸을까. 만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면 박 전 처장은 책임이 없을까. 간단치 않은 문제다.

주동자와 추종자가 있는 범죄에서 어느 선까지 처벌을 받아야 할까? 다산 정약용은 형법연구서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 이런 경우 주동자만 엄히 다스리고 추종자는 관대하게 처분하라고 했다.

만약 반대로 아랫사람만 구속하고 윗사람은 풀어준다면 어떨까. 있을 법 하지 않지만, 현재 서초동에선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은 이미 구속됐지만, 그의 상급자로서 혐의가 겹치는 박 전 처장과 고영한 전 행정처장은 구속영장이 기각돼 아직도 자유를 누리고 있다. 다산이 봤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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