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2019년도 카오스…바른 "입법안 제시할 것"

판결만 있고 법은 없다…바른 4차 산업혁명팀 "입법공백, 불확실성 지속"

황국상 기자 2018.12.27 10:18

"내년에도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은 입법공백으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분간은 기존 법규에 따라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을 둘러싼 법적 리스크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4차 산업혁명 대응팀' 팀장을 맡고 있는 최영노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의 얘기다.

2018년은 가상자산 업계의 '빙하기'였다. 1월 법무부가 가상자산 거래소 폐쇄를 추진한다고 했고 금융위원회가 법무부 방침을 재확인했다. ICO(가상자산 발행을 통한 자금모집)에 대한 전면 금지 방침도 나왔다. 비트코인, 리플,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 대표 종목들의 가격은 지난해 12월 고점 대비 최대 90% 가량 폭락했다.

◇판결만 있고 법은 없다


그럼에도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논의는 조금씩 진전됐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에 대한 분쟁에서 법원의 판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 변호사는 "올해만 해도 가상자산을 '재산'으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비롯해 가상자산 거래소의 부당한 영업행태에 대해 위법성을 인정한 판결, 가상자산 관련 강제집행을 시도한 결정 등이 나왔다"며 "그러나 구체적으로 입법된 게 없기 때문에 여전히 가상자산의 본질, 즉 가상자산 보유자의 권리가 물권인지 채권인지에 대한 정의도 내려지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분쟁 발생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주요 법무법인(로펌)들이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을 전문으로 하는 별도의 팀을 꾸렸다. 법무법인 바른도 그 중 하나다. 최 변호사를 비롯해 2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4차 산업혁명 대응팀'이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신규 산업과 관련한 법적 분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블록체인 관련 법률자문과 소송을 담당하며 산업 전반의 법제연구를 이끌고 있는 한서희 변호사(39기)를 주축으로, 오픈블록체인산업협회 감사이자 블록체인 관련 법령 개정과 규제개선 TF팀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연택 변호사(30기)도 최근 4차 산업혁명 대응팀에 합류하며 맨파워를 더했다.

◇"영리 목적 땐 세금 물릴 수도"

최근 바른이 '가상자산(암호화폐) 관련 법률 쟁점'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선 바른 '4차 산업혁명 대응팀' 소속 변호사들이 현재 가상자산·블록체인 관련 기업들 뿐 아니라 투자자들이 직면할 수 있는 민·형사 및 조세 부문의 쟁점을 총정리해 주목을 받았다. 시장 참여자들이 맞닥뜨린 불확실성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계기였다는 평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서울행정법원 조세전담부 부장판사 출신인 최주영 변호사(22기)는 "비사업자가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것은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이 아니지만, 사업자가 사고 팔 때는 '가상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가상자산을 '화폐'로 본다면 이를 매매하는 것은 일종의 '환전'에 해당해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이 아니지만, '재화'로 간주되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가상자산은 현행법상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으로 열거돼 있지 않아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개인이 영리목적으로 계속·반복적으로 가상자산 채굴이나 매매·중개활동을 했다면 이로 인한 소득은 소득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인세법이 법인의 과세대상 소득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내국 법인이 가상자산 채굴 및 매매·중개 등 가상자산 관련 사업에서 벌어들인 소득은 과세 대상이 된다. 투자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매매해서 벌어들인 소득도 마찬가지"라며 "최근 대법원이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비거주자, 외국법인의 가상자산 양도소득도 과세대상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측 가능성 확보해줘야"

검사 출신의 강태훈 변호사(36기)는 이 세미나에서 가상자산과 관련해 형법 등 다양한 법률이 어떻게 실제 형사적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짚었다. 예컨대 ICO 과정에서의 증권신고서 발행규정 위반시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 등이다. 강 변호사는 외국환거래법과 관련, 해외 ICO에 참여할 경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의무들과 가상자산을 활용한 소위 '환치기' 범죄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바른의 블록체인 전문 변호사인 한서희 변호사(39기)는 올해 대법원을 비롯해 서울중앙지법, 부산지법 서부지원 등 전국 각급 법원에서 나온 민·형사 판결·결정 뿐 아니라 해외 판결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영노 변호사는 "가상자산 산업 참여자들이 규제 불확실성을 피해 한국을 떠나고 있고, 입법 부재 상태에서 운영되는 거래소의 위법·탈법 행위들도 당장 문제가 되고 있다"며 "가상자산과 그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적절한 입법을 통한 제도권 편입이 필요하다. 산업 관련자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상자산 발행·거래 및 조세·회계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연구 결과를 축적해왔다"며 "조만간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 관련한 구체적 입법 방안을 제시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노팀장, 이성훈, 박기태, 김진숙, 최주영, 김현동 변호사(앞줄 오른쪽부터) / 사진제공=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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