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상속세제 개편을 논의할 때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정종화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9.05.04 05:00

최근 모 재벌그룹 회장의 사망 이후 언론에서는 상속인들이 납부하여야 할 상속세의 규모에 관하여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 상속인들은 대략 2000억 원 내외의 상속세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회장 사망 이후 역설적으로 그가 대주주로 있던 계열사들의 주가가 상승 추세에 있고, 피상속인 사망 전후 각 2개월 총 4개월 동안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세가 산정됨을 고려하면, 향후 주가 변동에 따라 상속세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 있으며,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상속주식의 매각, 이로 인해 그룹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주주 또는 지배구조 변동 여부 등에도 상당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같이 재벌그룹의 지배구조에 영향이 있을 정도로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 원 초과 상속재산에 대하여 50%의 상속세율을 적용하고,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된 최대주주 보유주식에 대하여는 추가로 20~30%의 할증평가를 통해 상속재산의 가치가 산정되므로, 실질적인 상속세율은 최대 65%까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속인들이 최대주주로서 보유한 주식의 65% 정도를 상속세로 납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극단적으로 100%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상속세 납부 후 남아 있는 주식보유비율은 35%에 불과하게 되어 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상속재산 가액이 30억 원을 초과한 경우 최고세율 50%를 적용하도록 한 규정이 만들어진 시기는 1999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20년 전이다. 20년 동안의 인플레이션만 고려하더라도 1999년의 30억 원과 현재의 30억 원의 가치를 비교하기 힘들 정도임이 자명하고,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사회변동 하에서 30억 원이 갖는 사회·경제적 가치는 점차 작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얼마 전 압구정동 소재 30평대 아파트 가격이 30억 원을 돌파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강남에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게 된 것이다.

OECD 가입국가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 50%는 일본(55%) 다음으로 높고, 최대주주 보유주식에 대한 할증과세까지 고려하면 가히 세계 최고수준이다. 일정 규모(자산총액 5천억 원) 이하 기업의 경우 상속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가업상속 공제제도가 있긴 하지만, 매우 까다로운 요건과 요건 불충족 시 사후적인 세액 추징 등으로 인하여 해당 제도가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가업상속 공제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법률 개정안은 각종 정쟁에 밀려 오랜 기간 국회에 잠들어 있다. 이로 인하여 창업주들은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도 막대한 상속세 부담이 걸림돌이 되어 평생 일군 기업을 남에게 팔거나, 일감 몰아주기 또는 해외 자본유출 등 편법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나라에는 100년 이상 장수기업이 채 10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이 3만 개 이상, 독일이 1만 개 이상의 100년 이상 장수기업을 보유하고 있음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고려하더라도 100년 이상 장수기업이 10개 미만이라는 점은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오늘 날 양극화 해소가 우리 사회의 주요 해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속세가 소득세의 보완세제로서 부를 재분배하고 기회의 형평을 제고하는 데 주된 기능이 있는 점 등 순기능을 하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이미 소득세를 납부한 소득에 대해 상속 시에 또다시 세금을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이미 이중과세적 요소가 있고, 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이 역시 피상속인으로부터 이전 받는 일종의 소득이라 할 것인데, 상속인이 부담하는 상속세율이 소득세 최고세율(42%)보다 높은 것은 그 합리성에 의문이 있다. 

최초 상속세 도입 당시 고율의 상속세율을 규정한 것은 과거 탈세가 만연하였던 아날로그 시대에 개별적인 소득자료를 추적할 여력이 없던 상황에서 비교적 세원 발견이 쉬운 상속 무렵에 이르러 한꺼번에 세금을 걷으려 하였던 것임을 고려하면, 오늘날과 같이 각종 소득자료의 전산화 등 조세 인프라가 구축되어 세원 추적이 용이해진 상황에서는 예전과 같은 고율의 상속세를 유지할 필요성도 감소되었다. 최근 국제적인 추세를 보더라도 캐나다, 호주,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중국 등은 상속세를 폐지하였거나 상속세 제도 자체가 없고,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들도 세율 인하 또는 공제범위 확대 등의 방법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추세에 있으며, 특히 자녀 등 직계비속의 가업승계와 관련하여서는 OECD 회원국 대부분이 세율이나 공제혜택을 통해 상속세 부담을 폭넓게 완화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우리 상속세제 역시 기업의 영속성·경쟁력 제고, 소득세율과의 균형 등을 고려하여 상속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상속공제 등으로 인해 실제 상속세 과세대상자는 연간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소수인 상황이고, 주기적인 재벌 갑질 사건, 기업 오너들의 범죄, 도덕적 해이 등으로 기업 적대감이 커지고 있는 사정으로 인해 상속세 부담 감소 논의는 일반 국민들의 반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벌들의 문제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하고, 상속세제에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기업가들의 기업경영 동기를 위축시킬 수 밖에 없으며, 기업들의 성장이 없다면 국가성장이나 일반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상속세율의 인하나 가업상속 공제제도의 활성화 등 상속세 부담의 완화를 논의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이러한 논의가 사회분열이나 계층 간의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그에 앞서 기업들의 투명성과 윤리성 제고를 통해 상속세제 개편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유) 화우 정종화 변호사의 주요 업무분야는 조세 및
국제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며, 그 이외에도 각종 행정처분 관련 업무 및 일반 민·형사 사건을 두루 수행하고 있다. 법인세, 소득세, 지방세, 부가가치세, 상속·증여세, 관세, 주세 등 과세처분 및 각종 인허가, 석유수입부과금을 비롯한 다양한 행정처분과 관련한 조세·행정쟁송, 자문사건을 처리하였고, 서울지방국세청, 기획재정부, 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 산림청 등 여러 행정부처에 대해 조세·행정 관련 자문을 제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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