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일반

[친절한판례씨] 채무한도 명시하지 않은 보증계약, 유효할까

대법 "불특정 다수 채무에 대한 보증, 최고액이 명시적 또는 구체적으로 기재돼야"

황국상 기자 2019.05.24 06:00

보증은 무섭다. '빚 보증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남이 진 빚을 내 이름으로 갚겠다는 약속이 보증계약이다. 그러나 남이 진 빚으로 인해 나 뿐 아니라 가족까지 거리로 내몰렸다는 얘기들은 심심찮게 들린다.

보증인이라고 해서 남이 진 빚을 무한대로 계속 감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보증채무의 최고 한도를 명시적으로 기재하지 않은 보증계약의 효력을 다룬 대법원 판결(2019년 3월14일 선고, 대법원 2018다282473)을 소개한다.

지역의 한 철강업체인 A사는 2016년 9월 공장을 신축하기로 하고 한 건설사에 25억3500여만원에 신축공사의 도급을 줬다. 이 건설사는 공사에 필요한 레미콘을 B사로부터 조달하기로 하고 레미콘 대금 지급의무에 대해 A사가 보증하기로 하는 내용의 보증계약을 B사와 체결했다.

그런데 이 건설사는 B사로부터 1억8300여만원 상당의 레미콘을 공급받은 후 1억500만원만 지급했다. 이에 B사는 A사에 연대보증계약에 근거해 나머지 잔금 7740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A사와 B사간의 주장이 다소 엇갈리지만 하급심에서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이 연대보증계약서와 관련해 △계약서의 연대보증인란에 A사 명의의 명판과 법인인감이 날인돼 있었고 △당시 공사 현장 대리인이었던 A사의 재무이사 또는 이 재무이사로부터 허락을 받은 건설사 직원이 계약서에 명판과 인감을 날인한 것으로 인정됐다. 다만 이 계약서에서는 보증채무의 한도에 대해 '1㎥당 6만1100원'이라고만 기재돼 있었을 뿐 A사가 B사에 보증해야 할 총액은 명시돼 있지 않았다.

A사는 우선 "B사와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며 "A사의 재무이사에게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이 없다. A사의 대표이사가 직접 보증계약서에 기명날인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보증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 "연대보증 의사와 범위가 계약서에 나와 있지 않아 보증계약은 무효"라고도 했다.

이같은 주장은 1,2심에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사의 재무이사는 현장 대리인으로서 공사 전반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인물인 만큼 보증계약을 체결할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재무이사의 주도 하에 체결된 보증계약은 유효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보증채무의 범위가 명확히 기재돼 있지 않다는 A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통상 공사 완료까지 필요한 레미콘만큼 구입한다는 게 상식적인 데다 △계약서에 기재된 '1㎥당 6만1100원'이라는 단가에 총량을 곱한 만큼을 A사가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원심의 판단이었다.

A사가 끝까지 원심에 불복해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이어졌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에서도 A사 재무이사에 의한 보증계약 체결사실 등에 대해서는 원심과 판단을 같이 했지만 단 하나의 사실 때문에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내라고 선고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보증채무의 범위'에 대한 부분이었다. 원심에서는 '1㎥당 6만1100원'이라는 단가 부분만 기재돼도 전체 보증채무가 확정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근보증', 계속되는 거래관계에서 발생하게 되는 불확정 채무에 대한 보증에 대해 원심이 법리오해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민법상 근보증 규정은 불확정 다수의 채무에 대해서도 보증을 할 수 있으나 채무의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서면으로 특정되지 않은 보증계약은 효력이 없다"며 "이는 불확정한 다수의 채무에 대해 보증할 경우 보증인이 부담해야 할 보증채무의 액수가 당초 예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어 이를 명확하게 해 보증인을 보호하려는 데 입법취지가 있다"고 했다.

또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서면으로 특정돼 보증계약이 유효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보증인의 보증의사가 표시된 서면에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명시적으로 기재돼 있어야 한다"며 "최고액이 명시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다더라도 서면 자체로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명시적으로 기재된 경우와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 기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문제가 된 보증계약서에는 레미콘의 규격과 1㎥당 단가는 기재돼 있었지만 총 레미콘의 공급량과 보증채무의 최고액은 기재돼 있지 않았고 달리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얼마일지 추단할 수 있는 기재가 전혀 없다"며 "이 계약서의 기재만으로는 보증채무의 최고액이 특정됐다고 할 수 없다. 원심은 근보증에서의 보증채무 최고액 특정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직후인 올 3월에 원심법원에 환송됐다. 원심법원에서는 아직 관련 심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관련조항

민법
제428조(보증채무의 내용)

①보증인은 주채무자가 이행하지 아니하는 채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②보증은 장래의 채무에 대하여도 할 수 있다.

민법
제428조의2(보증의 방식)

① 보증은 그 의사가 보증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있는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다만, 보증의 의사가 전자적 형태로 표시된 경우에는 효력이 없다.
② 보증채무를 보증인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도 제1항과 같다.
③ 보증인이 보증채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그 한도에서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방식의 하자를 이유로 보증의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

민법
제428조의3(근보증)

① 보증은 불확정한 다수의 채무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증하는 채무의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경우 채무의 최고액을 제428조의2제1항에 따른 서면으로 특정하지 아니한 보증계약은 효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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