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제 1주년, 정책공백에 시름하는 건설업계

하도급법학회 창립총회 "52시간제로 공사기간 연장 불가피"… "공기연장에 따른 비용·계약기간 관련 규정 미비" 지적 성토

황국상 기자 2019.06.23 12:00

한 주당 노동시간을 종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내달 1일로 1주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여러 층의 하도급 거래로 운영되는 산업·건설 현장 관련 규정의 공백이 메워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19일 서울 세종로 디타워 법무법인 세종 세미나실에서 '52시간 근로제와 하도급법'이라는 주제로 열린 하도급법학회 제1회 학회 세미나에서 학회장을 맡은 세종의 정종채 변호사(46·사법연수원 32기)는 "52시간 근로제가 공사기간과 공사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 공정예측기술이나 공사기간 산정공식이 확립돼 있지 않고 경험적 통계치도 부족하다"며 "하도급거래에 있어서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하도급계약 체결시점에 공사기간, 공사대금 결정 과정에서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에 이견과 분란이 생길 수 있다"며 "공사기간과 공사대금이 결정돼 공사가 진행되던 중 예상보다 공사기간·비용이 증가할 경우 이를 조정하고 해결할 방안이 없다. 하도급현장에서의 갈등과 분쟁이 빈번히 발생해 산업계 전반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에는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 근로시간 12시간, 휴일 근로시간 16시간을 더해 68시간까지 근로를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300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7월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을 더한 52시간으로 제한됐다. 당장 내년 1월부터는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2900여곳이 52시간제 적용을 받는다.

근로시간 단축은 건설계약처럼 장기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는 건설산업 등에 당장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계약 초기부터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미리 정해 계약을 체결하고 약속된 기한 내에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수급자가 발주자에게 지체상금(지연손해금 성격)을 지불하는 등 내용의 계약이 체결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52시간제로 인해 작업일수 자체가 줄어들면 종전보다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공사진척도 지연되는 게 불가피하다. 약속된 기간 내에 공사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데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공사비가 늘어나더라도 이를 건설사가 받아낼 방법은 마땅치 않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공사와 관련해 발주자에게 공사기간 연장의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건설사가 연장된 기간 투입한 비용(간접비)을 추가로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52시간제 도입을 전후해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표준도급계약, 공사계약 일반조건 등 민간·공공 계약에 권고되는 정부 예규 성격의 지침을 개정해 공사기간 연장, 공사비용 증가, 계약 변경 등의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게 정 변호사의 지적이다.

그는 각종 정부지침 등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준공지연이 불가피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으나 이를 판별할 기준이 모호해 발주자와 건설사간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효되기 전에 계약이 체결된 현장에 대해 정부지침 등 실천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발주처와 건설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기연장 및 추가비용 적용기준이 시급히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근로기준법과 하도급법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도급법학회 정책이사를 맡은 김순태 대림산업 법무팀 차장은 "지난해 대법원 전합 판결로 원사업자는 발주자의 귀책사유로 발주자로부터 공기연장 간접비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며 "그러나 수급사업자에게 원사업자가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하도급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하도급법학회는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른 하도급 관련 이슈의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과 건설업계, 학계 등 관계자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하도급법학회는 이날 세미나에 앞서 창립총회를 열고 정 변호사를 초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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