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미투' 승소 이끈 여성변회장 "최 시인 얘기 듣고 바로 오케이"

[피플]한국여성변호사회 제10대 회장 조현욱 변호사 인터뷰

하세린 기자 2019.11.20 06:00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 사진=강민석 인턴기자 msphoto94@

"지난해 8월 최영미 시인이 소송을 당했다며 직접 찾아왔어요. 최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분명한 객관적 진실이라는 확신이 섰고, 여변(한국여성변호사회)이 소송을 맡겠다고 얘기했죠. 그 자리에서 성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다뤄온 여성 변호사 4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모두 흔쾌히 '오케이'해서 바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8일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이 고 시인이 자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앞서 1심에서 패소한 고 시인은 곧바로 항소했지만 항소심의 결론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이 소송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한 이가 바로 한국여성변호사회 제10대 회장인 조현욱(53·사법연수원 19기) 변호사다.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 사진=강민석 인턴기자 msphoto94@

19일 서초동 양성평등지원센터에서 만난 조 변호사의 이력은 화려하면서도 '검소'하다. 1986년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한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10년, 판사로 10년, 그리고 변호사로 10년을 일했다. 이는 법대를 다니면서 '인생의 10년은 남을 위해 봉사하고, 10년은 전문가로서 치열하게 일하고, 10년은 변호사로서 일해보자'는 다짐을 실현한 것이기도 했다.

"전북 순창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서 그런지 '없는 사람'들에 대한 동질감이 어려서부터 있었어요. 처음엔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변호사님에게 '나도 여성 100인 회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 변호사님께서 '여기는 후원금으로 운영돼서 급여를 줄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급여를 받으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공단에서 일을 시작했죠."

전국의 구조공단 사무실을 돌며 소외계층을 변론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 회장은 구조공단에서의 10년을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수많은 근로자들과 농민들의 사건을 맡으면서 그들로부터 받은 고마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봉제공장 직원이 고마움을 전하겠다며 지어준 자주색 투피스 정장은 아직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소송을 대리했던 농민들이 살구 한봉지, 옥수수 한자루를 손에 쥐어주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는 2008년 변호사 개업 이후에도 대한변호사협회 장애인법률지원 변호사, 여성가족부 성폭력 피해자 무료법률구조지원 변호사, 서울시 상가 임대차분쟁조정위원, 법조 공익모임 '나우' 이사 등을 지내며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변론 활동에 힘써왔다.

사실은 로스쿨 교수 영입 제의를 받고 판사를 그만뒀는데, 딱 2년만 변호사를 한다는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2014년 인천에서 서울로 변호사 사무실을 옮기면서 아동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여성변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부회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내년 1월을 끝으로 2년간의 회장 임기를 마친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조 회장은 33년 전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로서 언론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제가 그때 한 말이 저한테는 숙제처럼 남아 있어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법적으로 돕겠다'고, 누구나 다 하는 얘기지만 어쨌든 이걸 꼭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의뢰인의 인생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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