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거짓말과 세 번의 사과[서초동살롱]

박수현 기자 2021.03.07 07:10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제공=대법원

"저의 불찰로 실망과 걱정을 끼쳐 드린 점에 대하여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4일 오후 2시. 김명수 대법원장의 전국법원장회의 '말씀자료'가 공개됐다. 코로나19 대응과 충실한 재판, 좋은 재판을 강조하는 4장의 자료 가운데 그간의 거짓말 논란에 대한 사과는 단 한 줄뿐이었다.

김 대법원장의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와 관련한 거짓 해명 논란 이후 이번 말씀자료까지 세 번의 사과가 있었다.

첫 번째 사과는 2월 4일, 임 전 부장판사가 녹취록을 공개한 직후였다. 김 대법원장은 "기억을 되짚어 보니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녹음자료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점에 대해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의 입장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기자단에 배포됐다. 대법원장이 거짓말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는 충격, 국민과 법원이 둘로 쪼개졌다는 결과에 비하면 가벼운 사과였다.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2월 19일. 김 대법원장은 2주 만에 떠밀리듯 두 번째 사과를 발표했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A4용지 1장짜리 글을 올렸다.

이번엔 형식보다 내용이 문제였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 사표 건에 대해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하여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치 않아." 임 전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록 속 김 대법원장의 발언들이다.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면 이 말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재판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대법원장에게 부여된 헌법적 책무의 엄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겠다"고도 했다. 사퇴론에 대한 대답이다. 국민 앞에 직접 서서 해도 모자랄 말을 법원 직원들만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올렸다.

2주 만에 전국법원장회의 말씀자료를 통해 세 번째 사과가 나왔다. 앞서 본 것 같은 한 줄짜리 사과문 다음 이런 문장이 붙었다. "올해도 대법원장으로서 변함없는 노력을 다할 것." 사퇴는 절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쩌다 임 전 부장판사에게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둘로 쪼개진 법원과 날로 깊어지는 사법불신을 어떻게 수습할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불찰' 불분명' '부주의' 같은 단어들을 내세워 처음 해명은 거짓이 아닌 실언이었을 뿐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삼부요인이자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2주 단위로 세 번이나 사과를 내놨지만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법원 내부는 혼란만 더해갔다. 충격과 실망을 표하던 판사들도 점점 무뎌져 갔다. 결국 김 대법원장 이슈는 '때맞춰' 나온 윤 전 총장의 사표에 묻혀 흘러가는 분위기다.

말은 흘러가도 기억은 남는다. 지성 중의 지성, 정의와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대법원장이 거짓말 논란에 휘둘렸다는 사실은 일선 판사들과 국민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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