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외도피' 선종구 "증여세 1400억 돌려달라"…조세심판원 추가심리키로

심재현 2024.03.15 04:00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맨왼쪽). /사진=홍봉진 기자

회사에 1700억원의 손해를 입혀 징역형이 확정된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77)이 해외도피 중에 1300억원대 증여세를 취소해달라고 청구한 사건을 두고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이 석연치 않은 조기 심리 종료를 시사했다가 뒤늦게 추가 심리를 하기로 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대법원 심판마저 무시한 채 해외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 전 회장이 법의 빈틈을 악용해 수천억대의 증여세를 탈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향후 심리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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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심판원은 당초 지난 12일 조세심판관회의에서 선 전 회장 일가가 국세청 과세에 불복해 제기한 증여세 1376억원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사건에 대해 내부 논의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었다. 주심을 맡은 박춘호 상임심판관이 선 전 회장 측과 국세청 양측에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사전 고지하면서 사실상 지난달 첫 심리에 이어 결심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 국세청과 선 전 회장 측 대리인이 모두 참석해 오후 4시30분부터 6시 이후까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면서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심리가 마무리됐다. 박 상임심판관 등 4명의 심판관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국세청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더 들여다보기로 결정했다. 다음 심리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조세심판원이 2014년 같은 사건에서 내린 결정을 준용해 선 전 회장 일가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가운데 국세청 측 대리인은 2014년 이후 이뤄진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에서 선 전 회장 일가의 탈루 혐의가 확인된 점 등을 내세워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심판원 결정은 대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져 과세당국이 패소하면 불복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날 선 전 회장 일가가 승소했다면 국세청이 증여세 1376억원에 환급가산금까지 더해 총 1400억원가량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국세청과 선 전 회장 일가의 증여세 공방은 햇수로 벌써 13년째다. 국세청은 선 전 회장이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에 하이마트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 주식을 본인 명의가 아닌 두 자녀의 명의로 취득한 것을 자녀의 명의만 빌린 '명의신탁'에 의한 증여로 보고 2012년 선 전 회장의 자녀에게 각각 544억원, 832억원 등 총 증여세 1376억원을 부과했다. 이후 선 전 회장이 사실상 자녀에게 재산을 넘긴 과정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느냐를 두고 국세청과 조세심판원, 선 전 회장 측이 법적 다툼을 벌였다.

조세심판원은 2014년 국세청의 증여세 부과가 명의신탁에 의한 증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재조사해 부과하라고 결정했다. 국세청이 과세 명목을 현금증여로 수정해 증여세를 부과하자 선 전 회장 일가가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8년 선 전 회장의 행위가 현금증여가 아니라고 확정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 5년만인 지난해 4월 국세청이 선 전 회장 자녀들에게 명의신탁에 따른 증여세 1376억원을 재부과하자 선 전 회장 일가는 조세심판원의 2013년 판단을 근거로 국세청이 명의신탁에 따른 증여세를 재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두번째 심판청구를 조세심판원에 제기한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법의 빈틈을 악용해 고액자산가가 증여세를 탈루하는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조계 한 인사는 "선 전 회장 일가가 과세당국의 잘못된 세금 부과에 대해 납세자가 좀더 수월하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 조세심판제도까지 악용해 세금을 회피하려는 상황"이라며 "조세심판원이 좀더 꼼꼼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 전 회장은 2005~2007년 AEP에 하이마트를 LBO 방식으로 매각할 당시 AEP에 하이마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해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기소됐다가 2022년 3월31일 대법원에서 징역 5년에 벌금 300억원이 확정됐다.

LBO는 매수하려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사에서 빌린 자금을 이용해 해당 기업을 사실상 무자본으로 인수하는 M&A(인수·합병) 기법이다.

선 전 회장은 1·2심에서도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지만 장기간 성실하게 재판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로 법정구속되지 않았다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직후 미국으로 출국해 잠적했다. 검찰은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선 전 회장의 해외도피를 파악, 인터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 조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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