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복지재단에 30억 유산 남긴 前남편…"애들 몫 받을수 없을까요"

[조혜정의 사랑과 전쟁]

조혜정 변호사 2016.04.12 08:14

Q. 전 남편이 쓴 유언 때문에 질문을 드립니다. 전 남편과 저는 5년 전에 이혼했고, 제가 고등학생이던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살았습니다. 남편은 저와 이혼한 다음 다른 여자와 같이 살았는데 정식으로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혼 후 남편은 양육비만 보내주고 아이들을 보러 온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문제는 한 달 전 남편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생겼습니다. 남편 장례식이 끝난 후 남편의 동거녀가 남편이 쓴 유언장이라면서 자필로 쓴 유언장을 내밀었는데, 그 유언장에 동거녀에게 재산의 반을 주고 나머지 반은 복지재단에 기부한다고 쓰여있던 겁니다. 동거녀는 이 유언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너희들은 권리가 없으니 그런 줄 알아라. 재산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답니다. 동거녀가 다 가져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들이 가져온 유언장을 보니 남편의 자필이 맞는 거 같긴 하지만, 내용이 너무 기가 막힙니다. 평소 아이들한테 정이 없긴 했지만 어떻게 아이들을 완전히 외면할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대학생으로 앞으로 학자금과 결혼자금으로 돈이 많이 필요한데 남편은 완전히 나몰라라 한 것이거든요.  

동거녀 말대로 우리 아이들은 남편의 유산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되는 건가요?  아이들이 일부라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참고로 남편의 재산은 30억 정도입니다.

A. 자식들에게 재산을 안 주고 사회에 환원한다는 분들이 존경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유족의 입장에서는 정말 서운한 일이네요. 기가 막히시다는 거 충분히 공감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남편의 자필유언이 유효해 그 내용대로 실행이 된다고 해도 자녀분들이 남편 재산의 반은 받을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실 건 없습니다. 바로 자녀들에게는 '유류분반환청구권'이라는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한 사람이 생전 증여나 유언으로 유산을 처분해서 상속인들이 상속을 못 받게 됐을 때 원래 자신의 법적인 상속분의 1/2까지는 생전 증여나 유증을 받은 받은 사람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거든요. 남편이 다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으니 남편의 상속인은 자녀들 뿐이니까, 자녀들이 유산을 가져간 동거녀와 복지재단에게 1/2은 돌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반은 확보한 셈이니까 안심하시고, 남편의 자필유언의 다른 문제점에 대해서도 같이 살펴보시지요. 먼저 자필 유언장이 유효인지를 검토해보셔야 합니다. 남편이 자녀들과의 유대관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동거녀와 살면서 작성한 유언장이기 때문에 자필유언장에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자필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 작성연월일, 성명, 주소를 직접 자필로 쓰고 날인을 해야 효력이 인정됩니다. 만약,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고 법적인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남편의 자필인지 여부가 의심스럽다면 필적감정을 해서 확인을 해보는 것도 고려해보세요.

자필유언 요건이 빠졌거나, 자필이 아니라면 남편의 유언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송을 해서 자필유언의 효력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소송 결과 자필유언이 무효라는 판단을 받게 되면 유언이 없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거니까 법적인 상속인인 자녀들이 남편 재산 전체를 상속할 수 있습니다.

자필유언이 유효하다고 해도 남편의 재산을 동거녀가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 유언장에 유언집행자가 지정돼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만약, 동거녀 혹은 제3자가 유언집행자로 지정돼 있다면 남편의 유언내용을 집행하는 권한을 동거녀 혹은 그 제3자가 갖게 되기 때문에 자녀들이 유언집행과정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첫 부분에 말씀드린 대로 동거녀와 재산을 받아간 복지재단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언집행자를 누구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없다면 남편유언 내용을 집행할 권한은 자녀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유언자가 유언으로 유언집행자를 지정하거나 제3자에게 지정을 위탁하지 않을 경우 상속인이 유언집행자가 됩니다. 보통 자필유언을 하면서 유언집행자까지 기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십중팔구 유언집행자에 대한 기재가 없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남편의 법적 상속인인 자녀들이 남편 유언 내용을 주도적으로 처리할 권한을 갖게 됩니다. 동거녀에게 재산을 주는 것이나, 유산을 기부할 복지재단을 선정하는 것도 자녀들의 권한입니다. 동거녀가 '알아서' 처리하거나 재산 전체를 가져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요.

말로 설명하면 간단한데 실제로는 이런 저런 법적인 절차와 소송을 거쳐야 할 수도 있고 시일도 상당히 걸립니다.  제 생각으로는 먼저 동거녀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동거녀가 유언으로 받아야 할 몫의 1/2을 주고 나머지 재산의 처리권한은 자녀들이 하는 것으로 합의 해보시고, 합의에 실패하면 그 때 법적인 절차를 개시하시는 것으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순조롭게 해결되길 바랍니다.

조혜정 변호사는 1967년에 태어나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언론에 칼럼 기고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협 인증 가사·이혼 전문변호사로 16년째 활동 중이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