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킨대로 해도 당연히 죄가 된다

[조대진의 法으로 본 시사이슈] 안종범 "대통령 시키는 대로 했다"…죄 안 될까?

조대진 변호사(법무법인 동안) 2016.12.21 15:59
왼쪽부터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 비서관/사진=뉴스1



최순실 공판이 드디어 시작됐다. 국정농단 폭로가 언론의 보도로 이루어진 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직후인 지난 10월 30일 오전 전격적으로 입국한 뒤 불과 2달여 만의 첫 재판이다.

국정농단 주범으로 박근혜 대통령 위 '상왕'이라고 불리는 비선의 정점 '최순실 재판'이기에 국민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별로 대단할 거 같지도 않은 '아줌마 얼굴'을 보겠다고 수백명이 방청권 경쟁을 벌인 것은 아닐테니 그만큼 국민의 관심뿐만 아니라 국민의 분노도 컸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처럼 국민 관심을 받고 있는 '최순실 재판'은 안종범 전 수석의 재판인 동시에 정호성 전 비서관의 재판이기도 하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를 받아 최순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다.

그러나 첫재판이자 공판준비기일인 19일에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은 최순실과 달리 출석하지 않았다. 물론 정식 공판기일 이전의 공판준비기일의 경우, 정식 심리에 앞서서 쟁점과 입증계획등을 정리하는 자리의 성격만을 가지기때문에 변호인이외에 당사자가 직접 출석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에는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피고인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하지만 이번 '최순실 사태'경우 워낙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라 사건의 당사자들은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으로 평가 받고 있는 최순실의 경우에는 오히려 출석했다. 반면 조력자 성격인 강한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은 출석하지 않았다. 국민의 공분을 감안해 볼때 본인들의 혐의점에 대해서 너무 느긋함과 혐의방어에 대한 입증 자신감을 내비치는 것 같아 국민의 한사람으로써는 조금 언짢은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최순실과는 달리 이들을 조금이라도 심리적으로 느긋하게 해준 것일까. 초기 검찰수사 당시부터 '일관되고 줄기차게' 본인들의 행위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항변한 안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에 대해 살펴보자.

정 전 비서관의 경우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본인 역시 이에 '가담하여 공모하였음'을 대체적으로 자백하는 취지로 조사에 임했다고 한다. 즉 위법한 지시인지의 여부를 떠나 일단 대통령과 범죄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였음은 최소한 인정했다.

안 전 수석의 경우는 본인의 혐의를 전면 부인은 하고 있지만 정 전 비서관의 경우처럼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행위를 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리해 보자면 이들의 입장은 결과야 어찌되었든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뿐이므로 본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라는 취지로 항변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기만 한 것이므로 처벌받지 않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키는 대로 해도 위법한 행위를 이행했다면 당연히 처벌' 받는다.

우리 형법은 제20조 정당행위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한 조항을 두면서, 법령에 의한 행위나 업무로 인한 행위일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는 것으로 즉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중 '법령에 의한 행위'에는 '상관의 명령에 의한 직무집행행위' 도 포함된다. 즉 다시 말하면 공무원이 법렵에 정해진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상관의 적법한 명령'을 수행한 경우에는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은 조각된다는 의미이다.

그럼 안종범 전 수석이나 정호성 전 비서관의 경우 이같은 조항을 근거로 본인들의 무죄를 주장할수있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역시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형법 제20조 정당행위로서의 '상관의 명령에 따른 위법성 조각'은 그 전제로 상관의 명령이 '적법한 명령'이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은 이미 검찰 조사과정에서 본인의 범죄사실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은 차치하고라도, '대통령과 범의의 공모'가 있었음을 이미 자백한 바가 있다. 즉 대통령 지시가 위법함을 알고 행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안 전 수석의 경우는 정 전 비서관과는 다르게 '시켰으니까 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지시한 것을 '적법한 명령으로 알고 이행했을 뿐'이라는 주장인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 전 수석 역시 처벌을 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형법학자 견해와 기존 판례를 살펴보더라도, 안 전 수석의 착오(즉 위법한 명령을 적법한 것으로 오인한 착오)는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은 착오의 판단에 있어서 '착오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예외적으로 위법성을 조각하기도 하나 안종범 전 수석의 경우는 이같은 '정당한 사유'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안 전 수석은 '왕수석'이라 불릴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현안을 포괄적으로 장악할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또한 본인 역시 학자출신이라 대통령 지시의 위법성정도는 금방 추단하고 눈치챌수 있다고 보는 게 일반 경험칙상 타당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론은 재판부의 몫이다. 필자가 모르는 다른 개별사실이나 정황, 그리고 변호인들의 현란한 변호기술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형법학자 의견이나 사건 밖 법조인의 예측은 그간 판례를 통한 경험칙적 추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에 드러난 증거들만으로 비춰 볼때 국민들의 판결은 이미 내려진 듯하다.

법원의 재판은 '여론재판' 성격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법감정과 법기대'에 현저히 벗어나서도 안 될 것이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판결을 당연히 기대하지만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반화된 이 시점에서 안심만 하고 있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똑똑하고 정의로운 판사님들'의 존재를 한번 믿어보자.

법무법인 동안의 조대진 변호사는 1기 전국 로스쿨 대표자 협의회 회장 출신으로 경실련 소비자 정의센터 운영위원, 아름다운 가게 법무윤리경영실 변호사 등 공익·시민단체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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