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겐 가장 매력적인 '현장실습생'…그들의 죽음을 아십니까

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일 하다 목숨까지 잃는 고등학생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김광민 변호사(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2017.02.09 17:38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한국은 고용유연화 정도가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측정방법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고용유연화 정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고용유연화 정도가 높다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고 정규직의 경우도 해고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가급적 크게 보이려는 노측과 반대로 적게 보이려는 사측 간 간극은 있지만, 절반을 상회한다는 것이 다수의 주장이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산업 자체가 3, 4차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직이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는 현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고용관계에서 탈피해 사용자로서의 여러 의무를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도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전체 근로자 중 정규직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과 큰 변화 없이 영업을 영위해오고 있는 몇몇 제조업 중심 기업에서도 비정규직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은 이를 반증한다.
◇드라마 '미생' 이후 관심집중…'비정규직' 문제 해결 하겠다더니 3년 째 '제자리'

2014년 온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종합편성채널임에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미생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애환을 담았다. 정치권도 미생의 인기를 반영하여 여야를 막론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앞장섰다. 하지만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때 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통계청의 2월 8일 발표에 따르면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무려 22%나 됐다. 청년 10명 중 2명은 실업상태라는 것이다. 그나마 취업에 성공한 8명도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와중에 유력 대선후보 중 한명이었던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은 청년들에게 취업 자리가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하라고 했다가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만큼 청년일자리에 대한 정치권과 현장의 시각차가 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권은 기업에게 채용을 확대하라는 요구 외에 청년 일자리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업이 채용에 소극적이고 채용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서 지적하였듯 가급적 고용관계를 회피한 채 노동력을 사용하려는 목적이 크다. 노동자를 채용하더라도 도급이나 파견 등의 형식을 이용하여 고용관계를 회피하고, 불가피할 경우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여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최대한 면하려는 것이다.

◇비정규직·파견보다 싼 안정적 인력공급 방법이 있다?…'특성화고 현장실습'

그런데 이와 같은 사용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채워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그것도 도급, 파견 또는 비정규직 보다 비용까지 저렴하다. 심지어 인력공급 또한 안정적이다. 바로 특성화고등학교의 현장실습이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제7조는 "직업교육훈련생은 직업교육훈련과정을 이수하는 중에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현장실습을 의무화 하고 있다. 때문에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은 3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현장실습을 나간다.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은 1997년 제정되었지만 그 기원은 1963년 제정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례가 깊은 제도다. 

현장실습은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실제적인 업무를 배우고, 일자리 연계를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학습 보다는 단순노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취업으로 연계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습과 취업이라는 본래 목적의 상실 보다 더 큰 문제는 실습생에 대한 착취다.

기업은 현장실습생을 받으면 근로계약이 아닌 협약서를 체결한다. 때문에 실습생들은 근로자가 아닌 실습생의 지위에 서게 되고 임금이 아닌 실습수당을 받는다. 그런데 이 수당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졸업 필수요건인 실습을 마쳐야 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실습을 나갈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실습 후 채용이라는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불합리를 참아내고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장실습이 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사 채용되더라도 저임금의 고강도 노동은 계속되기 일쑤다.

◇현장실습 하다가 '자살·뇌출혈'…일 하다 '죽는' 고등학생들, 왜?

2016년 5월 5일, 어린이날 분당의 유명 외식업체 직원이었던 20살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군포의 한 특성화고에 재학 중이던 2015년 12월 7일 해당 외식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2016년 2월 졸업 뒤에는 취업으로 전환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까지 해당 업체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입사 후 4개월 만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 체중이 10㎏이나 빠졌고 정신적으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장시간 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에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24일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익사체의 여성이 발견되었다. 그녀는 특성화고 재학생으로 한 기업의 고객서비스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었다. 현장실습의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객서비스센터가 대체적으로 높은 강도의 감정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고려해 본다면 그녀의 자살 역시 현장실습에서 발생한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학생이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은 18살, 어린 나이의 학생을 노동자들 사이에서 가장 기피되었던 스프레이 도장 및 재연마 공정에 배치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중 3명에게서 백혈병이 발병하기도 하여 노동자들 중 그 누구도 해당 공정에 가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공장은 현장실습생에게 법정근무시간을 30시간이나 넘긴 주 70시간의 근무를 시켰던 것으로 밝혀졌다.

취업 기회 제공은 커녕 착취·사고만 유발하는 '현장실습'…근본적 고민 필요한 시점

이 외에도 현장실습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사건은 2012년 울산 한라건설 해상크레인 작업선 전복사건, 2014년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금영ETS 공장붕괴 사건, 2014년 충북 진천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 투신자살 사건 등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특성화고등학교의 현장실습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체 끊임없이 사건·사고만 유발하고 있다. 심지어 사건·사고는 현장실습생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과연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실제적인 업무를 배우고, 일자리 연계를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는 것은커녕 오히려 산업현장에서 소모품으로 소비되고 취업문은 굳게 닫혀있는 현장실습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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