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성년후견인 어디까지 '대리' 할 수 있을까

삼화제분 오너 일가, 성년후견인 '주주권' 대리 행사 두고 '갑론을박'…'가족다툼' 끝낼 수 있을까

박보희 기자 2017.04.11 23:59




회장인 아버지가 쓰러졌다. 장남은 회사 주식의 90%에 이르는 지분과 대표이사 명함을 물려받았다. 1년여 뒤, 어머니가 소송을 냈다. 남편이 쓰러진 이후 아들이 불법적으로 회사 지분을 가져갔다며 법원에 주주권 확인을 요청했다.

법원은 '주식증여계약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주식은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법원은 의사소통조차 힘든 아버지의 성년후견인으로 J법무법인을 지정했다.

성년후견인이 된 법무법인은 대주주인 아버지를 대신해 주주총회를 열고 아들인 대표이사를 교체하겠다고 통보했다. 아들은 '법원은 주식이 누구 것인지 확인한 것이지 대표이사까지 교체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고 맞섰다. 아들은 '성년후견인이 회사 경영까지 간섭할 권한은 없다'며 법원에 '성년후견인의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성년후견인은 아버지의 주주권을 대리해 행사할 수 있을까. 성년후견인의 권한은 어디까지 일까.

◇'주식·경영권'두고 집안싸움…성년후견인이 대표이사 교체할 수 있을까

'부동산 재벌'로 유명한 삼화제분의 이야기다. 지난 2012년 9월 박만송 회장이 뇌출혈로 병석에 눕고 박 대표이사가 지금의 자리를 물려받은 지 1년 후, 박 회장의 지분과 경영권을 둘러싼 지리한 소송이 시작됐다.

3년여간의 법정 다툼 끝에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주식증여계약서는 무효이고 주주권은 박 회장에게 있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법원 결정에 따라 회사 지분은 아버지인 박 회장에게 되돌아갔지만, 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성년후견인이 된 J법무법인은 대표이사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범죄 행위가 발견된 박 대표이사가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이사는 사문서 위조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성년후견인은 대주주인 박 회장을 대신해 주주총회를 열어 대표이사를 비롯한 이사진 3명과 감사 1명으로 구성된 임원진 전원을 교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 대표이사 측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박 대표이사 측은 "아버지의 의사능력이 완전했던 지난 2009년 이미 삼화제분과 25개 개인사업장의 총괄사장직을 물려줬다"며 "박 회장이 쓰러지기 전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이미 물려받은 상황에서 성년후견인이 주주권을 행사해 대표이사직을 빼앗는 것은 피후견인의 복리와도 무관하고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반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이 피후견인이 된 후에 한 법률행위는 성년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한 일까지 취소할 권한은 없다는 주장이다. 민법 제947조는 '성년후견인은 피성년후견인의 재산관리와 신상보호를 할 때 여러 사정을 고려해 그의 복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이 경우 성년후견인은 피성년후견인의 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면 피성년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포괄적 법정대리' 성년후견인…구체적 권한은 '개인별'로 법원이 결정

성년후견인은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의 이유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피후견인)에게 법원이 의사결정을 대신할 법적 후견인을 정해주는 제도다. '포괄적 법정대리인'으로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상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민법 제949조는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재산에 관한 법률행위에 피후견인을 대리한다'고 정해두고 있다.

다만 후견인이라고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상에 대한 모든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민법 제938조는 가정법원이 성년후견인의 법정 대리권의 범위, 신상에 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고 정해두고 있다. 성년후견인을 정하는 것도 법원이고, 성년후견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정하는 것도 법원인 셈이다.

이에 대해 가정법원의 A판사는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때문에 성년후견인의 권한 역시 사안마다 다르다"며 "법원이 성년후견인을 지정할 때 각자의 사정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권한 범위를 정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는 역시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성년후견인의 권한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주식 가치에 영향 커 인정해야"vs"피후견인과 이해충돌 우려"

성년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에 대해 포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대주주인 피후견인을 대신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A판사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아 피후견자의 주주권을 후견인이 대신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이번 사건이 첫 판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례가 없는 만큼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뉜다. 성년후견제도에 정통한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B변호사는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주식 가격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피후견인의 재산 관리와 관련해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수 있다"며 "법원이 성년후견인을 정할 때 이같은 점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년후견인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하겠지만 피후견인의 의결권을 대리해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른 의견도 있다.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법조인 C씨는 "원론적으로 법원이 포괄적 재산관리권을 인정했다면 주주권도 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성년후견인의 기본 원칙은 피후견인의 이익을 위해야 하고 피후견인과 이해충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피후견인의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에서 후견인이 의사결정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독단으로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가족 간 이해관계가 얽혀 분쟁이 있을 때 성년후견인이라도 더 가까운 쪽이 있을 수 있다"며 "피후견인의 의사확인이 힘든 상태에서 성년후견인이 자의적인 결정을 하면 또 다른 분쟁이 불거질 우려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성년후견인으로 활동 중인 D변호사는 "성년후견인이 포괄적 법정대리권을 갖지만 재산처분행위 등 일부 행위는 법원의 허락을 받고 해야 한다"며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재산의 유지, 관리 수준을 넘어가는 의사결정 행위는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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