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95억' 아내 살인범으로 몰린 남편, 결국…

[서초동살롱<170>]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처럼 직접증거 없어…대법원 "다시 심리하라"

이태성 기자 2017.06.03 04:01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아내가 남편이 몰던 차에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별로 다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의 사망보험금으로 무려 95억원을 받게 됐습니다. 남편을 살인범으로 의심할만한 정황이죠.

그런데 대법원은 이 남편의 살인 혐의가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내 사망보험 26개 가입…보험금만 95억원

2014년 남편 이모씨는 캄보디아 여성인 아내(당시 24세)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화물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는 숨졌지만, 이씨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만 입었습니다. 아내는 당시 임신 7개월 상태였는데,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경찰에서 사고에 대해 '졸음운전'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단순한 사고로 처리될뻔 했던 이 사건은 이씨가 아내의 사망으로 보험금 수십억원을 타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급변했습니다. 이씨는 교통사고 전 꾸준히 아내의 보험을 늘려 26개까지 가입했고, 이 보험을 전부 타게 되면 9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이씨에게 살인 혐의가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수사 결과 숨진 아내의 혈액에서 수면 유도제 성분이 나왔습니다. 아내를 일부러 재웠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이씨가 아내 장례식 후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점, 조수석의 파손 부위가 운전석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점, 사고 차량의 뒷바퀴가 11자로 나란히 정렬돼 있던 점 등 대부분의 정황이 이씨를 범인으로 가르켰습니다.

엇갈린 법원 판결…대법원은 '무죄' 선고

1심 재판부는 그러나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씨가 충분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범행을 단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형사사건에서 법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의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설령 피고인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찮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도록 합니다. 1심은 명확한 물증이 없었기 때문에 이씨 진술대로 졸음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조수석 파손 부위가 운전석보다 많은 점 △뒷바퀴가 11자로 나란히 정렬돼 운전자가 충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아내 사망 시 이씨가 95억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탈 수 있는 보험에 가입을 했던 점 등을 근거로 이씨가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씨를 의심스럽게 한 정황을 모두 살해의 동기로 본 것입니다. 이씨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습니다.

이씨는 1심, 항소심, 그리고 대법원에서까지 졸음운전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이씨의 주장이 의심스럽지만, 범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1심 판결을 재확인합니다. 대법원은 "가능성이 있는 여러 의문을 떨쳐내고 고의사고라고 확신하기에는 더 세밀하게 심리할 부분이 많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우연히 대형 화물차의 정차 상황을 만나자마자 이씨가 1분도 되지 않은 시간 내에 범행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고, 이씨 역시 크게 상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을 고려했습니다. 

또 "이씨는 사고 당시 자산이 빚보다 상당히 많았고, 월 수익이 900만~1000만원에 달했다"며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사고를 낼 만큼 급하게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물적 증거 없는 살인, 정황증거 판단에 판결 엇갈려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했기 때문에 이씨는 항소심 재판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살해 동기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 만큼 검찰이 이를 추가로 입증하면 다시 유죄 판결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씨 부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가 됩니다.

이처럼 법원의 판단이 갈리는 것은 살인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이같은 사건이 있었는데요,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만삭부인 의사 살인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은 재판에 7년 8개월이 걸렸던 사건으로, 물적증거가 없는 대표적인 살인사건으로 꼽힙니다. 이 사건은 치과의사 A씨 집에서 아내와 딸이 욕조에서 숨진채 발견된 사건입니다. 검찰은 A씨가 출근하기 전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욕조에 두 사람을 담근 뒤 불을 질러 시신을 발견하게 한 것으로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A씨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초동수사에 헛점이 있었고 검찰은 아내와 딸의 살해시점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합니다. 7년8개월에 이르는 재판의 결론은 무죄였죠. 

만삭부인 의사 살인사건 역시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대법원을 오가며 5차례 재판이 있었고, 해당 의사에게는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침실 등에서 발견된 혈흔이 다툼의 흔적 △백씨가 당일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의문스러운 행동을 보인 점 △정황상 제3자의 범행으로 볼 수 없는 점 등 정황증거로 살인죄를 인정했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파기환송심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적인 물적증거가 나오긴 힘들어보이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얼마만큼 이씨의 살해 동기를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유죄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 사람의 죽음과 보험금 95억원이 걸린 이번 사건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