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법과 여론, 냉정과 열정 사이

양성희 기자 2017.08.28 05:00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반띵 판결이네."
"대부분 유죄인데 양형이 저 정도면 기업하기 정말 좋은 나라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자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뇌물공여를 포함한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받았는데 형량이 너무 낮다는 주장들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처럼 법원의 판단과 '국민법감정'이 어긋나는 경우는 종종 있는데요. 얼마 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스폰서 의혹에 휘말렸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도 그랬죠.

국민법감정이 얼마나 거셌냐면 조 전 장관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판사를 두고 '가짜뉴스'가 떠돌 정도였습니다. 해당 판사가 라면을 훔친 사람에겐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반면 블랙리스트 작성·관여 혐의를 받는 조 전 장관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는 것이죠. 유명 정치인까지 이 루머에 가세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스폰서 검사로 불린 김 전 부장검사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을 땐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스폰서로 지목된 고교 동창에게서 계좌로 받은 돈 1500만원 등이 '빌린 돈'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데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변호사로 개업하면 돈을 갚겠다"고 한 김 전 부장검사의 메시지를 근거로 삼았는데 납득하기 어렵다는 거죠.

◇법과 여론 사이 간극, 왜?

국민법감정은 '국민감정법' 또는 '국민정서법'으로 바꿔 쓰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감정이나 정서에 어긋나는 법 또는 판결을 마주했을 때 주로 드러나죠. 성문법이 아닌 불문율이지만 "실정법 위에 국민감정법"이란 말도 있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범죄자들을 모두 사형에 처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처리돼야 합니다. 범죄와 형벌을 정할 땐 반드시 법률에 규정된 대로 따라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왜 국민법감정이 자꾸 기존 법이나 판결과 어긋나는걸까요. 우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을 곱씹어볼만 합니다. 그는 저서 '부의 미래'에서 '혁신속도론'을 언급하며 "기업이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변하는 반면 정부는 25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법은 1마일로 변화한다"고 말했습니다. 법의 변화 속도가 느리다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텐데요. 태생적으로 법이란 게 사회변화를 미리 예측해 미리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 반영하는 쪽에 가까운 탓에 사후적 대처가 불가피한 면도 있죠. 현행법을 기초로 한 법원 판결을 종종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국민법감정, 따를까 말까

상식에 기반한 국민법감정이라면 판사도 재량범위 내에서 수용할 수 있습니다. 법리와 일반상식 사이 괴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는 거죠. 대법원이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11월 이 선장이 세월호 승객들의 구조 요청을 외면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혼자만 탈출한 책임이 무겁다며 참사의 결과를 살인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판결문에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행위와 다름 없다"고 썼습니다. 대형 인명사고에서 살인 혐의를 처음 인정한 것인데요.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세월호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형 사건을 거치며 책임자들을 살인 혐의를 적용해서라도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어온 결과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여론재판을 할 수는 없겠죠. 앞서 언급한 죄형법정주의 때문입니다. 법원이 여론보다 법을 앞세운 대표적인 예가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까지 됐지만 2015년 5월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건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대 쟁점이었던 항로변경죄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면서 한 말인데요. 재판부는 "지상에서의 이동을 항로 변경으로 본다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법과 여론이 상충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때론 여론이 법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법'(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그런 예죠. 김영란법이 없을 땐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사실상의 뇌물을 받아도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 '스폰서 검사'와 '벤츠 여검사' 사건이 그랬죠. 이는 김영란법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울산계모 사건'을 계기로 2014년 9월 신설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도 하나의 예입니다. 아동학대치사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검찰이 법원에 친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한 거죠. 자, 다음은 어느 법을 손 볼 차례일까요? 국민법감정에 귀를 기울여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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