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역사에 남을 황당한 실수…김기춘의 운명은?

항소이유서 시한 넘겨 제출, 항소 기각될 수도…"재판부 판단 지켜봐야"

김종훈 기자 2017.09.04 05:00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뉴스1

요즘 변호사들 사이에 화제인 재판이 하나 있습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의 항소심 재판인데요.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 적용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사건이었죠. 그런데 이 사건이 황당한 '실수' 하나로 예상치 못한 갈림길에 섰습니다.

문제는 '항소이유서'에서 비롯됐습니다. 항소이유서는 항소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투고 싶은지를 설명하는 문서를 뜻하는데요. 형사소송법 제361조의4에 따르면 항소이유서를 제때 내지 않을 경우 법원은 원칙적으로 항소 기각 결정을 해야 합니다.

같은 법 제361조의2와 제361조의3에 따르면 항소이유서의 제출 시한은 '소송 기록을 넘겨받았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통지가 피고인에게 도달한 날로부터 20일 이내입니다. 이번 최순실 특검법은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이 시한을 7일 이내로 줄였습니다.

김 전 실장에게 항소심 재판부의 통지가 도달된 건 지난달 21일입니다. 사선 변호인이 선임되기 전 잠시 사건을 맡았던 국선변호인에게는 지난달 22일 도달됐죠. 그런데 새로 선임된 사선 변호인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건 지난달 30일 새벽 3시 전후라고 합니다. 제출기한인 7일을 넘긴 것이죠.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항소심에선 김 전 실장의 항소이유를 다루지 않아야 합니다. 김 전 실장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항소이유만 살피게 되는 것이죠.

변호사 업계에선 김 전 실장 쪽에서 날짜를 착각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변호사는 "(김 전 실장 쪽에서) 특검법에 있는 특별규정을 놓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서류의 제출 시한 같은 것은 변호사라면 누구나 숙지하는 내용"이라면서도 "그런 업무는 보통 사무소 직원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보면 착오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1년 '스폰서 검사' 사건을 수사한 민경식 특별검사팀 때 같은 일이 있었는데요. 당시 특검팀은 1월28일에 소송기록 접수 통지를 받고 7일 기한을 넘겨 2월15일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가 항소기각 결정을 받았습니다.

일반 사건에서도 이런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다고 하는데요. 한 변호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피고인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이번 경우와 똑같은 이유로 아예 항소 기각 결정을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본인 사건이면 어땠을 것 같느냐"는 물음에 변호사들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말 항소 기각 결정이 나오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가능한 사안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른 변호사는 "법조 역사에 길이 남을 '실수'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며 혀를 찼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61조4항에 따르면 항소이유서 제출 시한을 넘겼어도 재판부가 직권조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로 인정됩니다. 결국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다는 것인데요. 한 판사는 "항소심 첫 공판을 봐야겠지만, 그 전에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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