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불온서적 헌법소원 낸 軍법무관 강제전역은 잘못"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8.03.22 15:10
/사진=뉴스1

전직 군 법무관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강제로 전역 당한데 대해 강제 전역 처분은 잘못됐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전직 군법무관 지모씨가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자신의 전역 처분은 위법하다며 낸 전역처분등취소소송에서 지씨에게 패소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기 위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국방부는 2008년 7월 북한을 찬양하며 반정부·반미·반자본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서적이라며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그러자 지씨 등 군법무관 7명은 같은 해 10월 불온서적 지정 조치가 장병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를 알게 된 육군참모총장은 2009년 3월 지씨를 파면했다. 그러자 지씨는 파면 처분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냈다.

해당 사건을 맡은 1·2심 재판부는 “법령준수의무와 품위유지의무 위반은 인정된다”면서도 “파면 처분은 가혹하다”는 취지로 판결을 선고해 확정됐다. 해당 판결 취지에 따라 2011년 9월 지씨가 복직하자 참모총장은 재판에서 인정된 징계사유에 따라 2011년 10월 다시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국방부는 이 징계 처분을 근거로 2012년 1월 지씨를 강제전역시켰다. 그러자 강제전역 처분에 불복한 지씨는 2012년 강제전역 처분은 위법하다면서 두 번째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지씨의 청구가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1심 법원은 “상관의 지시, 명령에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지휘계통을 통해 건의하는 등 군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는 징계사유는 인정된다”면서 “군법무관 여러명이 공동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 역시 군인이 ‘군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금지’하는 규율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 1심 법원은 “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직접 또는 대리인을 통해 언론 매체에 인터뷰를 하도록 해 군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킨 점도 규율 위반”이라고 보고 징계처분이 적법하며 전역처분의 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법원도 1심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다만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다수 의견을 내놓은 8명의 대법관은 징계사유가 없다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군인은 국민보다 기본권이 더 제한될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법률유보원칙, 과잉금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면서 “상관의 지시나 명령 그 자체를 따르지 않는 행위와 이를 준수하면서도 위법 또는 위헌이라는 이유로 재판청구권을 행사하는 행위는 구별돼야 한다”면서 복종의무 위반이 없다고 봤다.

사전건의 의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부하는 상관에게 상담이나 건의를 할 수 있다는 복무규율이 있지만 군인에게 건의나 고충심사를 청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군인의 재판청구권 행사에 앞서 반드시 건의제도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홍보에 관한 법령준수의무와 품위유지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헌법소원의 소송대리인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행위를 지씨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지씨가 직접 언론 접촉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며 의무 위반이 없다고 봤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대법원은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전역 처분 역시 처분사유가 없어 위법하다”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반대의견을 내놓은 4명의 대법관은 “이번 징계 처분은 군 내부 시정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채 집단으로 지시에 불복종하려는 수단으로 헌법소원 제도를 이용했다는 것을 사유로 이뤄진 것”이라며 “징계처분이 위법하다면 향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집단을 이룬 군인들이 재판청구권의 행사라는 명목을 빌려 불순한 의도의 군무 외 집단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제재하기 어려워 군기 문란과 국가 안전보장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군인의 재판청구권 행사가 복종 의무에 위반되지 않는 기준을 제시했다”면서 “법령의 규정에 없는 사전 건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행위가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기본권 제한을 위해서는 법률유보원칙이 준수돼야 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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