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된 유류분, 헌재 "시대 안 맞다"…제2의 구하라 사건 막는다

박가영, 정진솔 2024.04.26 04:00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민법 제1112조 등 유류분 제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헌법재판소가 25일 가족 구성원에게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을 상속하도록 한 민법상 '유류분 제도' 일부에 대해 47년만에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것은 시대 변화와 국민 법 감정을 반영한 결과다. 유류분 제도가 대가족 제도와 장자승계가 주류였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도입됐던 제도인 만큼 당시 입법취지가 퇴색된 시점에서 손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류분 제도는 1977년 12월 민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뒤 지금까지 한번도 개정되지 않고 유지됐다. 당초 입법 목적에는 특정인에게 상속재산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아 가족이라는 제도가 유지되도록 하는 한편, 당시 아들 위주로 유산이 분배되던 사회 분위기에서 부인과 딸도 상속을 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반영됐다.

헌재는 이날 유류분 제도 자체가 유족 생존권을 보호하고 가족간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유효하다는점은 인정했다. 재판관들은 "유류분 제도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하려는 취지가 있고 가족의 연대가 단절되는 것을 저지하는 기능을 갖는다"고 밝혔다. 유류분 분할 비율에 대해서도 현행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농사 짓던 때와는 다르다…형제자매는 유류분 제외


헌재가 이날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부분은 고인의 형제자매들에게 최소 상속금액을 보장하는 민법 제1112조 제4호다. 형제자매에게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우리 민법은 일본, 독일 등 대부분 국가와 달리 형제자매까지 유류분권자로 인정해 범위가 과도하게 넓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헌재는 과거와 달리 가족관계 변화 등으로 고인의 형제자매가 상속 재산 형성에 기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들에게 상속 권리를 보장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 는 "과거 유류분 제도가 도입됐던 당시와 지금의 법 현실은 괴리가 크다"며 "형제자매는 다른 유류분권자에 비해 헌법이 보장하고자 하는 혼인 및 가족생활 제도와 거리가 있다는 점을 헌재에서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제 숨진 채로 발견된 가수 고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영정./사진공동취재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패륜 가족, 유류분 청구 못하게 된다


인연을 끊고 산 부모나 패륜을 일삼은 자녀에게도 망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재산을 주도록 한 유류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데는 2019년 숨진 가수 구하라씨 사건 등에서 가족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이 상속을 받는 데 대해 국민적인 공분이 컸던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헌재 결정으로 부양 의무를 저버리고 자녀 유산만 챙기겠다는 '구하라씨 친모 사건'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 활동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국회는 2021년 부양의무를 게을리한 부모를 상속 결격자로 정하는 취지의 일명 '구하라법'을 상정했다. 법무부도 2022년 6월 '구하라법'과 비슷한 내용의 상속권상실제도 신설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두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패륜가족에 대한 유류분 권리를 배제하는 것과 같은 취지로 생전 고인의 병간호를 한 가족 등의 기여분을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도 나왔다. 현행 민법 제1008조의 2는 사망자를 장기간 간호·부양하거나 재산 증식에 기여한 공동상속인의 기여도를 인정해 상속분을 정하도록 했지만 민법 제1118조는 제1008조의 2를 유류분에 준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유류분 반환 청구를 당할 경우 상속인의 기여도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동안 법의 허점으로 지적됐다. 이를테면 현행 유류분 제도에 따르면 부모를 극진히 모신 장남이 특별히 상속받은 뒤 평생 남처럼 살던 둘째가 갑자기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면 장남은 이를 나눠줘야 하는 상황이다.

헌재는 "정당한 대가로 받은 기여분 성격의 증여도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되면서 기여상속인에게 보상하려고 했던 피상속인의 의사가 부정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국회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조항에 대해 2025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 22대 국회는 다음 달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법조계 한 인사는 "최근에는 대기업 재벌가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상속 분쟁이 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법이 어떻게 개정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며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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