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일반

[친절한 판례氏] '상호'만 빌려썼는데…前주인 빚 대신 갚으라고?

대법 "상법상 상호속용 책임은 예외조항, 임차인에 대한 적용은 불가"

황국상 기자 2018.07.03 05:05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상법 제42조는 '상호속용'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영업을 양수받은 사람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속용)할 때, 양도인이 영업을 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제3자에 대한 채무도 양수인이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제3의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영업을 양수한 자가 아니라 단지 '영업을 빌린' 임차인에게까지 이 상호속용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법원 판례(2016년 8월24일 선고, 2014다9212)가 있어 소개한다.

A씨는 자신이 보유하던 골프 연습장의 영업을 2011년 8월부터 2012년 7월까지 1년간 임대차 형식으로 B씨에게 빌려줬다. 골프 연습장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과 세금, 공과금 등의 부담은 모두 B씨의 몫이었고 사업자등록 등 대외적으로도 B씨가 '대표'로 돼 있었다. 그럼에도 엄연히 A씨와 B씨 사이의 계약은 임대차계약이었다.

문제는 A씨가 B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기 전 이미 해당 골프장 영업과 관련해서 C씨에 대해 2억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C씨는 강제집행을 위해 골프 연습장 재산을 압류하려고 했지만 사업자등록이 B씨 명의로 돼 있다는 등 이유로 집행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C씨는 B씨를 상대로 A씨가 갚아야 할 대여금 2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다. B씨가 A씨의 골프 연습장을 빌려서 영업을 하고 있으니 '상호속용' 조항에 따라 돈을 갚으라는 주장이다. 

원심은 C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B씨로 하여금 2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심 재판부는 "영업의 임차인은 외부에 대해 영업의 주체가 되고 그 영업으로부터 생기는 권리·의무의 귀속자가 된다"며 "영업 임차인이 임대인의 상호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에도 상호속용 규정을 유추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같은 원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영업 임대차의 경우 채권자에게 실질적인 담보로 볼 수 있는 영업재산의 소유권은 재고상품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임대인에게 유보돼 있고 임차인은 그 사용·수익권만 가진다"며 "임차인에게 임대인 채무에 대한 변제책임을 부담시키면서까지 임대인의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상호속용 책임은 어디까지나 원래의 상호를 가지고 있던 이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 상호의 사용권을 소유한 양수인에게만 적용할 수 있을 뿐, 임차인에게까지 직접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타인의 채무에 대한 변제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채무인수처럼 당사자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책임을 부담할 의사를 표시할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며 "예외적으로 법률 규정에 의해 당사자 의사와 관계 없이 타인의 채무에 대한 변제책임이 인정될 수 있으나 유추적용 등 방법으로 그 규정을 확대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원심은 상법상 상호속용 규정의 유추적용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한편 원심법원은 2016년 12월 이 사건을 새로 심리했는데 B씨에게 A씨의 채무원금 2억원에 지연이자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에는 '상호속용'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당초 C씨가 강제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B씨가 A씨의 재산을 감추는 과정에 관여됐다는 점이 확인된 데 따른 손해배상금 명목이었다. 이 판결은 B씨가 채무 상당액의 손해배상액을 내는 것으로 확정됐다. 

◇관련조항
민법
제453조(채권자와의 계약에 의한 채무인수)
① 제삼자는 채권자와의 계약으로 채무를 인수하여 채무자의 채무를 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이 인수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이해관계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채무를 인수하지 못한다.

민법
제454조(채무자와의 계약에 의한 채무인수)
① 제삼자가 채무자와의 계약으로 채무를 인수한 경우에는 채권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효력이 생긴다.
② 채권자의 승낙 또는 거절의 상대방은 채무자나 제삼자이다.

상법
제42조(상호를 속용하는 양수인의 책임)
① 영업양수인이 양도인의 상호를 계속사용하는 경우에는 양도인의 영업으로 인한 제3자의 채권에 대하여 양수인도 변제할 책임이 있다.
② 전항의 규정은 양수인이 영업양도를 받은 후 지체없이 양도인의 채무에 대한 책임이 없음을 등기한 때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양도인과 양수인이 지체없이 제3자에 대하여 그 뜻을 통지한 경우에 그 통지를 받은 제3자에 대하여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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