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법원의 영장 '불평등'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9.13 04:00
대한민국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법 앞에'라는 문구는 법의 내용은 물론 '법의 적용과 집행'도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다. 나아가 헌법은 법률에 의해 국민에 대한 체포·구속·압수·수색을 허용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은 법원의 영장 발부를 통해 이를 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이례적으로 제한하는 법원의 영장 발부는 당연히 헌법상 원칙대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영장 통계를 들여다보면 '법 앞의 평등'이란 명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공개한 '2017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은 총 18만 8538건, 이중 법원이 발부한 영장은 16만8268건으로 발부율은 89.2%였다. 열 중 아홉 허용한다는 소리다. 압수수색영장의 경우 증거수집, 즉 수사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 쉽게 발부되는 편이다. '피의자(피고인)의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 이른바 압수수색의 요건이다.

반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거래해 재판 과정과 결과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두 달 동안 200여건의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10% 내외에 불과했다. 특히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대해 청구한 50건의 압수수색영장 가운데는 단 한 건만 발부됐다. 급기야 영장이 여러 차례 기각되는 동안 피의자가 압수수색 대상 문건을 파기하는 일도 생겼다.

법원이 공개한 압수수색영장의 기각 사유는 다양하다. "자료가 거기 있을 리가 없다"부터 시작해 "임의제출할 가능성이 있다" "일개 심의관(판사)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 행정처 문건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는 문구도 있다. 통상 영장 기각사유에서 보기 힘든, 확정판결에서나 있을 최종적 판단 문구들이다. 정말로 요건에 따라서만 영장을 심사한 것인지,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영장심사 과정과 판단에 대한 근거가 전혀 공개되지 않아서다.

우리네 같은 장삼이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과 법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 기준이 어떤 이유에서 달라야 할까. '다른 사건에서의 영장 발부와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부분의 판사들은 답을 피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임의수사가 원칙이다. 압수수색 영장이 기존에 너무 남발된 측면이 있다. 이번 기회를 반면교사 삼아 영장을 좀 더 면밀히 봐야 한다"고 했다. 그 동안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주지 못했으니, 압수수색 영장을 더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소리다. 옳은 말이다. 법원부터 그 면밀한 검토를 적용받자는 주장만 빼면 말이다. 낯뜨거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드 남이 하면 불륜)이다.

백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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