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권 보장 위한 국제 표준 '형사공공변호인제' 또 미룰 것인가

박하영 법무부 법무과장

박하영 법무부 법무과장(부장검사) 2018.12.10 05:43
2014년 1월 서울 시내 극장 안 영화 '변호인' 포스터 앞을 지나는 관람객의 모습 /사진제공=뉴스1

2010년경 어느 수사기관에서 수십 명의 피의자들이 고문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고, 그 사건으로 인해 여러 명의 경찰관이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더라도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는 요즈음도 종종 접해 볼 수 있다. 피의자들은 체포되는 순간, 외부와 단절되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될 수 있으므로 변호인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것이 바로, 국선변호인의 혜택을 수사단계의 피의자에게까지 확대하는 내용의‘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인권 보장’을 위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할 필요가 있다는데에는 별다른 반론이 없지만, 제도의 운용 방식과 관련하여서는 다소의 이견이 있는 듯하다.

우선, 운용 형태와 관련하여 국가에서 변호사를 직접 고용할 경우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효율성도 떨어지므로, 사선변호사를 활용하되 국가는 금전적인 지원만 하는‘법률부조 방식’이 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충분히 경청할 만 한 내용이고, 법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형사변론 경험이 많은 변호사 후보군 중 적임자를 지정하여 선임하고 변론케 한 다음 국가가 비용을 지급하는 소위‘계약 변호사’형태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소수의 변호사를 운용기관에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으로 법무부의 감독을 받는 공공기관(법률구조공단)에서 제도를 운용할 경우, 독립적인 변호 활동이 제약될 것이라는 등의 우려도 제기된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의 운용 주체로 법률구조공단이 매력적인 것은, 그 건물이나 시설 등 물적 자원과 행정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 200여개가 넘는 수사기관에 대응하는 기관을 새로이 만드는 것은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적절치도 않다.

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유능한 변호사의 추천, 변호사의 활동에 대한 평가’등은 법원·검찰·변호사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위원으로 구성된 독립 기관인 관리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법률구조공단의 행정 지원 업무 조차도 기관 내 다른 부서와는 차단된 ‘칸막이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러한 독립성에 대한 지적은 기우에 가깝다. 참고로 일본은 2016년부터 국선변호 혜택을 모든 구속 피의자에게까지 확대하였는데, 법무성의 감독을 받는 법테라스(사법지원센터)에 그 운영을 맡기고 있다.

물론 제도 시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다른 운용상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운용 방식과 관련된 문제제기가 제도의 존립을 좌우할 정도의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면, 일단 제도 도입 후 운용 과정에서 적절히 수정·보완하면 족할 것이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 중이고, 2013년 UN가이드라인도 같은 취지로 권고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수사절차에서의 국선변호인 도입 여부를 논의해 왔고, 이제 선택의 기로에 있다. 인권 보장에 관한‘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또 미룰 것인가?
박하영 법무부 법무과장 / 사진제공=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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