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상의 침소봉대] 지적장애인 꾀어 하루만에 혼인, 무효된 이유

법원 "혼인신고 당시 필요한 의사능력 결여, 혼인 합의 인정 못해"

황국상 기자 2019.05.11 06:00

여(A씨) : "자기, 내가 누구야?"
남(B씨) : "와이프"
여(A씨) : "그래, 그럼 나하고 혼인신고 하러 갈까?"
남(B씨) : "응"
여(A씨) : "그래, 가서 혼인신고 하고 오자. 그래야 같이 살 수 있어"
남(B씨) : "알았어"

2016년 11월 부산의 한 병원에서 두 남녀가 나눈 대화다. 대화 내용만 보면 연인 사이의 프러포즈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프러포즈를 전후한 사정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이같은 대화가 오고간 장소가 병원이었다. B씨는 전년도 추락사고로 두개골 함몰·분쇄 및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등 중상을 입고 입원해 1년 가까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다. B씨는 인지능력 저하, 보행장애 등 일상생활 동작수행 장애 판정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B씨가 사고를 입기 이전에 동거한 적이 있는 A씨가 돌연 병원에 나타났던 것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이 둘은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 곧바로 병원을 빠져나갔다는 것이었다. A씨가 B씨를 데리고 간 곳은 병원 근처의 주민센터였다. B씨에게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했다. 프러포즈와 신분증 발급, 그리고 혼인신고까지 하루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B씨의 인지장애 등에 대해 A씨가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A씨는 혼인신고를 한 지 불과 1주일여 만에 B씨에 대한 성년후견 개시심판을 청구했다. B씨의 의사능력이 부족해 온전한 법률행위를 할 수 없으니 A씨 자신이 후견인으로서 B씨를 대리해 법률행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B씨의 친형이 법원에 소송을 냈다. A씨와 B씨의 혼인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취지에서였다. 2016년 말 접수된 이 사건은 만 2년2개월이 지난 올 1월에서야 결론이 났다. 법원은 B씨 친형의 주장을 받아들여 A,B씨의 혼인이 무효라고 판결했다(부산가정법원 2019년 1월31일 선고, 2016드단15613)

법원에서 A,B씨의 결혼을 무효로 본 이유는 B씨에게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민법은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B씨가 A씨와의 혼인에 '합의'를 하려면 본인이 의사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실제 법원이 B씨에 대한 감정을 실시한 결과 B씨의 지능은 정신연령 8~12세에 불과하고 인지장애의 정도 역시 '중증' 상태로 점차 악화되는 상황이었음이 확인됐다. B씨가 입원한 병원에서도 "스스로의 판단 하에 혼인신고를 하기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인정사실과 증거 등에 따르면 B씨는 사고로 인해 정신적 능력과 지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A씨의 제안으로 A씨를 따라가 혼인신고를 작성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A,B씨가 함께 당국에서 혼인신고서를 작성했고 B씨가 결혼의 의미를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이 과거에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B씨에게는 부부에게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능력이 결여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B씨는 향후 A씨와 대등한 관계에서 혼인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 채 A씨 주도 하에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며 "두 사람이 신고한 혼인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A,B씨 양측 어디도 항소하지 않아 이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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