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희의 소소한法 이야기]'안종범 수첩'은 되고 '최순실 태블릿'은 안된다?

법 어겨가며 얻은 증거 인정 안돼…'강압수사' 막고 '사법정의' 실현 위해

박보희 기자 2017.01.28 21:29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대치동에서는 특별검사팀이 수사를 벌이는 가운데, 서초동에서는 최씨와 관련자들의 형사재판이, 북촌에서는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정에서는 '안종범 수첩'을 두고 다툼이 있었는데요.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2년 동안 대통령의 지시를 꼼꼼하게 기록해 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업무 수첩만 총 17권, 510쪽에 달합니다. 수첩 안에는 각종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들이 가득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안 전 수석의 변호인 측은 "검찰이 수첩을 보고 돌려주겠다 해놓고 돌려주지 않았다"며 검찰이 위법하게 수집한 것으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안 수석의 수첩을 증거로 인정했죠. JTBC가 입수한 '최순실 태블릿PC' 역시 증거 능력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인 바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증거'가 증거로 인정을 받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실을 찾아 진실을 밝혀내려면 증거는 많은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왜 어떤 것은 증거가 되고 또 어떤 것은 증거가 될 수 없는 걸까요.

◇법 어겨가며 얻은 증거…'적법한 절차' 따르지 않았다면 증거로 못써

형사소송법 제308조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적법한 절차'란 어떤 걸까요. 윤보미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외에도 다른 법률을 포함해서 위배되지 않는 방식으로 수집된 증거만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말 그대로 적법한 과정을 거쳐 얻은 증거만 법정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절차를 어겼거나 훔친 물건처럼 법을 어겨가며 얻게 된 물품을 법원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떻게든 사실을 밝혀줄 증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은데 왜 이런 법이 만들어진걸까요. 대법원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응책은 이를 통해 수집한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수사'라는 이유로 공권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남용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니, 수사기관도 법대로 수사를 하라는 뜻이겠죠.

다만 '적법한 절차'라고 법이 정해두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고 정해둔 것은 아닙니다. 예외가 있기도 합니다.

대법원은 "형식적으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라도 획일적으로 증거 능력을 부정하는 것 역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취지에 맞는다고 볼 수 없다"며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증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판단은 판사의 몫입니다. 같은 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판사가 제출된 증거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한 것인지 등을 검토해 증거로 선택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거죠.

◇범행 자백 해도 다른 '증거' 없으면 '무죄'?

자백은 어떨까요. 범인이 '내가 한 일이다'라고 자백을 하고 나면 범인이 밝혀진 것이니 사건은 끝나는 걸까요.

아닙니다. 법은 자백을 했어도 이를 뒷받쳐줄 증거나 정황이 없다면 믿어주지 않습니다. 같은 법 제310조는 '불이익한 자백의 증거 능력,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일한' 이라는 부분인데요.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게 당사자의 자백 뿐이라면 그 자백은 믿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백을 하더라도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규정을 두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윤보미 변호사는 "무고한 사람이 억지로 자백을 해 처벌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백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수사 기관이 강압수사를 할 수도 있기때문이라는 거죠.

법은 수사기관이 공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어책을 두고 있습니다. 같은 법 제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공권력의 문제가 있었다면 자백도 증거로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다만 자백의 경우 '자백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정황, 증거만 있으면 됩니다. 대법원은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는 범죄사실의 전부 또는 중요 부분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는 안되더라도 자백이 진실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족하다. 직접 증거가 아닌 간접 증거나 정황 증거도 보강증거가 될 수 있고, 자백과 보강증거로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면 유죄의 증거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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