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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또 사법부가 멈춰섰다…"국회의 직권남용"

[MT리포트-대법원장 잔혹사, 사법부가 멈췄다]①

심재현 2023.09.25 05:00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입술을 굳게 닫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61·사법연수원 16기)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24일 만료되면서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현실이 됐다. 1993년 김덕주 대법원장이 재산공개 문제로 사퇴한 이후 30년 만의 사법 공백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표결 시점과 상관 없이 '동의안 부결'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사법부 공백이 연말까지 장기화할 가능성도 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둘러싼 정치권의 '위험한 대치'가 결국 사법부를 멈춰세웠다는 얘기가 나온다.

체포동의안 정국과 맞물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임명동의안 처리가 예정됐던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이달 초 여야 합의에 따르면 25일 본회의가 무산될 경우 다음 본회의는 11월9일이다. 민주당이 오는 26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 뒤 여야가 10월 중 본회의 개최 일정을 잡지 못할 경우 사법부 수장 공백은 최소 한 달 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서는 국회의 직권남용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사법부를 무시한 직권남용의 여지가 크다"며 "국회가 자기 입맛에 맞는 후보자를 고르고 가릴 게 아니라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민주당이 부결론을 고수한다면 사법 공백이 더 길어질 수 있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된다. 임명동의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 재적의원 298명 중 168석을 보유했다.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동의안 부결 이후 35년만의 첫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운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다시 거치자면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연말연초까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정국은 더 냉각되면 누가 후보로 올라오더라도 쉽게 인준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대법원장 공석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선고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는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통상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해 대법원 소부에서 이견이 있는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 전원합의체 운영이 중단되면 유사한 쟁점의 하급심 사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안철상 선임대법관(66·15기)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수행하면서 그동안 주심을 맡거나 심리에 참여했던 대법원 소부 사건에도 여파가 갈 수밖에 없다. 신임 대법원장 체제에서 추진하려던 사법혁신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법조계 한 인사는 "일각에서는 2017년 200일 넘게 이어진 헌법재판소장 공백 사태를 핑계로 대법원장 공석 사태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착각이 더 큰 문제"라며 "사법부 수장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취급받는 게 정상적인 사회일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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