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할포기받고 외도 용서하고 싶은데..

[조혜정의 사랑과 전쟁]

조혜정 변호사 2016.10.11 11:27

/이지혜 디자이너


Q) 저는 올해 59세, 남편은 65세입니다. 남편과 저는 20년 전 만났는데 그 때 저는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 둘을 혼자 키우고 있었고 남편은 이혼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할 때 남편이 이혼이 안 되어 혼인신고를 못했고 그 후에도 각자 자식들이 있으니까 혼인신고를 하지 말자고 해서 지금까지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년간 남편과 저는 사이좋게 살아왔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좋아서 남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얼마 전 남편이 지난 1년 넘게 다른 여자와 외도를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집을 나가라고 했더니 남편은 재산분할청구를 하겠다면서 나가버리더군요.

20년 동안 제가 번 돈으로 먹고 살았는데 남편이 재산분할을 청구하겠다니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남편은 제가 준 사업자금을 두 번 날리고 나서는 다시 일을 하지 않고 10여년 전부터 1주일에 이틀 정도 제가 하는 가게에 나와서 일을 도와주면서 지냈고 살림을 약간 거들어 주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제가 생활비를 다 댔고 남편에게 월 100만원 정도 용돈을 쓰게 해줬습니다.

한동안 남편한테 연락이 없어서 이제 끝인가보다 했는데 남편이 며칠 전 잘못했다면서 다시 들어올테니 용서해달라고 하네요. 이 나이에 헤어지면 뭐하나 싶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있으니 그만 용서해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남편이 나가면서 재산분할청구 운운 했던 생각이 나서 마음이 좀 꺼림칙합니다.

만약 앞으로 남편과 헤어지게 된다면 혼인신고를 안 했고 돈도 다 제가 벌었는데도 제가 남편한테 재산분할을 해줘야 하나요? 남편한테 다시 들어오는 조건으로 재산분할포기한다는 각서를 받으면 그게 효력이 있을까요? 재산은 15억 정도 되는 다세대 주택과 가게가 있는데 둘 다 제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A) 보통 혼인신고를 안 하면 헤어질 때 재산을 나눠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그건 잘못된 상식입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사실혼 관계로 인정받을 정도의 부부공동생활이 있으면 헤어질 때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혼인기간 중 공동의 노력으로 축적한 재산에 대한 재산분할청구권도 인정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들도 헤어질 때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경우에도 선생님이 주로 돈을 벌고 생활비를 댔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 어느 정도 재산분할을 받을 권리가 인정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산분할청구권은 결혼생활기간 중 각자가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 하는 점만을 고려해서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기간 중의 가사노동, 배우자로서 상대방에게 준 정서적인 안정과 정신적인 지지 등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기여 부분도 고려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쪽에게도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보셔야 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기여가 크게 차이가 난다면 이 점이 분할비율에서 반영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만약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남편에게 재산분할포기각서를 받으면 효력이 있겠느냐 하는 질문은 확답을 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우리 법원이 결혼생활 기간 중 작성된 각서의 효력에 대해서 효력을 잘 인정하지 않는 추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결혼생활 중 작성된 각서는 협의이혼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혼소송을 하는 경우에는 각서의 효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협의이혼을 하게 되면 결혼생활중 작성한 각서가 효력이 인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2월 대법원이 재산분할청구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협의이혼을 한 후 재산분할청구를 했던 사건에서 협의이혼을 해도 각서가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해서 새로운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각서 작성과정에서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된 재산액이나 기여도, 분할방법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각서는 '재산분할청구를 포기한다'는 한 줄짜리 각서였을 겁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위자료 청구를 안 한다', '재산분할청구를 포기한다'는 식으로, 배우자가 써달라는 대로 써주는 각서는 이제 협의이혼을 하든 이혼소송을 하든 효력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생활 중 작성된 모든 각서가 효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지한 협의없이 경솔하게 작성된 각서는 효력이 없지만 재산의 액수, 기여도, 분할방법 등에서 대해서 구체적으로 작성한 각서라면 효력이 인정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과 재산분할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두면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가 되리라고 봅니다. 그 각서에는 재산의 내역과 금액, 기여도, 남편이 외도를 용서받는 대가로 재산분할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셔야 하고, 필수요건은 아니지만 공증을 받는다면 신뢰도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겁니다. 남편과 협의를 잘 하셔서 각서를 작성하고 금슬좋은 부부로 돌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조혜정 변호사는 1967년에 태어나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언론에 칼럼 기고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협 인증 가사·이혼 전문변호사로 16년째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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