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채무

[친절한판례氏] 남편소유 아파트 임대준 아내…보증금 반환 책임은?

보증금 사용처가 공동 생활비였다면 남편도 반환 책임 있어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7.02.07 21:14

우리 민법은 '부부(夫婦)'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부부 간에는 서로의 일상적인 가사 관련 업무를 대신해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런 범위 안의 행위에 대해서는 부부가 연대해 책임을 부담하도록 규정(민법 제832조)하고 있다.

 

다만, 부부가 서로 대신해줄 수 있는 '일상가사'의 범위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부라도 서로를 대신해 법률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이런 행위는 무권대리(無勸代理), 즉 권한 없이 대리한 행위가 된다. 구체적인 사례에서 민법상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에 해당되는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법에서 정한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의 의미와 판단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례(2014다58139)가 있다.

 

부부인 A씨와 B씨는 일정한 소득이 없어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단지 이들 부부에게는 남편인 A씨가 소유한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기 때문에 이 아파트를 임대해 얻는 임차보증금만이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A씨의 아내 B씨는 남편의 허락을 받아 그를 대신해 C씨와 아파트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남편 명의 계좌로 임대차보증금을 송금 받았다. 이들 부부는 받은 임대차보증금을 생활비에 충당했고, 일부는 A씨 명의 대출금의 상환에도 사용했다.

 

그러던 중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된 C씨는 아파트의 주인인 A씨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달라고 했지만, 이미 보증금을 모두 소비한 A씨는 자신이 직접 C씨와 계약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에 C씨는 A씨를 상대로 법원에 임대차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남편을 대신한 아내의 아파트 임대 행위가 민법 제832조에서 말하는 일상가사대리에 해당돼 그 법률행위에 따른 채무 역시 부부가 연대해 책임지게 되는지 여부가 문제됐다.

 

대법원은 C씨의 손을 들어줬다. B씨의 행위가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 안에 포함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먼저 "문제가 된 법률행위가 일상의 가사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그 법률행위의 객관적인 종류나 성질과 함께 법률행위를 한 사람의 의사와 목적, 부부의 현실적 생활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B씨가 남편 A씨로부터 권한 일체를 위임받아 계약을 체결했던 점, △B씨가 C씨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받을 당시 부부가 생활비 관리용으로 사용하던 A씨 명의 계좌로 송금을 받았던 점, △받은 보증금의 사용처 역시 생활비나 A씨의 대출금 상환에 사용됐던 점을 고려해 "임대차보증금의 사용처가 모두 부부의 공동생활과 관련됐던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B씨가 A씨의 아파트를 임대한 것 역시 부부에게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고려됐다.

 

따라서 B씨가 C씨와 한 임대차계약 역시 민법 제832조에 따라 A씨에게까지 효력이 미쳐, 보증금 반환 채무 역시 부부 모두 부담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A씨는 C씨의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됐다.

 

 

◇ 판례 팁 = '부부 일방이 일상 가사에 관해 서로 대신할 수 있는 법률행위'라는 표현에서 '법률행위'란 일정한 법률관계를 창설하거나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사표시를 뜻한다. 따라서 임대차계약의 체결은 임대차계약관계를 만들어내는 의사표시라는 점에서 당연히 법률행위가 된다.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선 부부 일방의 행위는 무권대리행위가 된다. 따라서 민법 제130조의 무권대리 규정에 따라 상대방 배우자가 이를 추인(追認), 즉 과거로 소급해 무권대리를 한 배우자의 행위를 인정해주는 의사표시를 해야만 본인에게 법률행위에 따른 책임도 발생하게 된다.

 

한편,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부부 일방의 행위가 제3자로서는 권한이 있는 대리행위였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이때는 그 제3자의 믿음을 보호해준다는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 규정이 적용되게 된다. 따라서 법률행위를 하지 않은 본인인 상대방 배우자는 제3자에 대해 다른 일방이 한 행위의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표현대리 규정은 선의의 제3자를 선의의 상대방 배우자보다 우선해 보호해주는 규정이기 때문에 엄격한 제한 하에서만 인정된다.

 

 

◇ 관련 조항

- 민법

제126조(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대리인이 그 권한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제130조(무권대리) 대리권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 한 계약은 본인이 이를 추인하지 아니하면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없다.

 

제832조(가사로 인한 채무의 연대책임)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삼자와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다른 일방은 이로 인한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미 제삼자에 대하여 다른 일방의 책임없음을 명시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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