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 판례氏] 명의대여한 예금계좌, 누가 주인일까?

은행은 실제 주인 알아도 명의자를 예금주로 보고 처리하면 돼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6.11.09 15:12


실제 돈의 주인과 그 돈이 들어 있는 예금계좌의 주인이 다를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누구를 진짜 예금주로 보아 거래 처리를 해야하는지 애매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은행은 원칙적으로 예금계좌 명의인을 예금주로 보면 된다는 판단한 대법원 판례(2013다2504)가 있다.


2011년 3월, A씨와 B씨는 B씨 명의 계좌로 4억원을 입금해 B씨가 은행으로부터 그 금액에 대한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정을 했다. 그러면서 대신 A씨는 예금계좌 개설과 예금잔액증명서 발급 등의 업무를 모두 본인이 대리해서 처리하며, B씨 이름의 예금잔액증명서 발급 후에는 본인이 직접 위 계좌에서 4억원을 다시 인출해 회수하기로 했다.

 

약정에 따라 B씨는 A씨에게 4억원에 대한 차용증서와 함께 A씨가 자신 명의의 은행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필요한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 주민등록증, 위임장 등을 교부했다. 이들은 B씨가 4억원에 대해 어떤 권리도 없으며, B씨가 임의로 돈을 인출하거나 비밀번호 등 예금계좌 정보를 바꿀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각서도 작성했다.

 

그 뒤 A씨는 X은행 지점에서 B씨를 대리해 그 명의 예금계좌를 개설해 4억원을 입금한 뒤 4억에 대한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X은행 지점장은 A씨의 부탁에 따라 다음날 아침 이 예금계좌에서 4억원을 인출해 A씨 명의 계좌로 입금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B씨는 그날 오후 X은행의 다른 지점에서 인터넷뱅킹을 신청한 뒤, 곧바로 다음날 인터넷뱅킹으로 3회에 걸쳐 임의의 비밀번호를 입력해 비밀번호 오류입력 제한횟수를 초과시켜 정당한 비밀번호를 눌러도 예금인출을 할 수 없게 계좌를 막아 놓았다. 그러고 나서 B씨는 X은행을 찾아 예금주의 자격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X은행 지점장은 A씨와의 약속에 따라 B씨 명의 예금계좌에서 4억원을 인출하려 했지만, 비밀번호 입력오류로 인해 실패하자, 바로 이 사실을 A씨에게 알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A씨는 지점장에게 "비밀번호는 맞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며 해당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지점장은 "예금계좌의 예금주는 명의인 B씨"라며 "A씨의 요청만으로 지급정지를 할 수 없고, 비밀번호 입력오류 발생에 대한 진상 파악이 필요하다"면서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에 A씨는 X은행과 지점장을 상대로 지급정지 거부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X은행 등이 A씨가 아닌 B씨를 예금주로 전제해 A씨의 지급정지 요구를 거절한 것이 타당한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본인인 예금명의자(B)의 의사에 따라 예금명의자의 실명확인 절차가 이루어지고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하여 예금계약서를 작성하였음에도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A)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라고 볼 수 있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재판부는 "은행과 A씨 사이에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서면으로 이루어진 B씨와의 예금계약을 부정하여 그의 예금반환청구권을 배제하고, A씨와 예금계약을 체결해 그에게 예금반환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별도로 존재했어야 한다"며 은행과 실제 돈의 주인 사이 별도의 명시적 합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예금명의자를 예금액에 대한 권리자로 본다고 설명했다.

 

금융실명제에 따라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보는 법리(예금주 확정 원칙)에 비추어, 법원은 은행으로서는 A씨(출연자)와 B씨(예금명의자) 사이 예금반환청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분쟁이 있고, 그들 사이 내부적 법률관계를 은행이 알고 있었더라도 일단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전제해 예금거래를 처리하면 된다고 봤다. 또 은행이 A씨가 진짜 예금주임을 알았더라도 B씨를 예금주로 전제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한 것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법원의 판단에 따라 결국 X은행과 은행지점장의 행위는 적법한 것이 돼 A씨의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판례 팁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은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고객과 실명으로 거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명거래를 통해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은 원칙적으로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보면 된다고 판단한 것 역시 이러한 금융실명법의 이념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 관련 조항

- 민법

제105조(임의규정)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실지명의(실지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실시하고 그 비밀을 보장하여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꾀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4. "실지명의"란 주민등록표상의 명의, 사업자등록증상의 명의,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명의를 말한다.

 

제3조(금융실명거래) ① 금융회사등은 거래자의 실지명의(이하 "실명"이라 한다)로 금융거래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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